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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융(朗融) ☞랑융(朗融) 2018. 4. 17.
랑융(朗融) 명랑 법사의 밀교 신인종을 계승한 신라말 승려로 짐작되지만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명랑신인(明朗神印) : 우리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울 때 또한 해적이 와서 침범하니, 이에 안혜(安惠)ㆍ낭융(朗融) 후예들인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두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쳐 진압했으니, 모두 명랑 계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구조(九祖)로 삼았다. (본사기本寺記에는 삼사三師가 율조律祖가 되었다고 했으나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태조가 글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세워 한 종파(宗派)의 근본을 삼았다. 2018. 4. 17.
안혜(安惠) 명랑 법사의 밀교 신인종을 계승한 신라말 승려로 짐작되지만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명랑신인(明朗神印) : 우리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울 때 또한 해적이 와서 침범하니, 이에 안혜(安惠)ㆍ낭융(朗融) 후예들인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두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쳐 진압했으니, 모두 명랑 계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구조(九祖)로 삼았다. (본사기本寺記에는 삼사三師가 율조律祖가 되었다고 했으나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태조가 글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세워 한 종파(宗派)의 근본을 삼았다. 2018. 4. 17.
존승(尊勝) 신라 중기 때 각간 벼슬을 지낸 사람인 듯한데,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혜통황룡(惠通降龍)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혜통의 세속 이름은 존승 각간(尊勝角干)이라고 하는데 각간은 곧 신라의 재상과 같은 높은 벼슬이니, 혜통이 벼슬을 지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랑(豺狼)을 쏘아 잡았다고 하지만 모두 자세히 알 수 없다. 2018. 4. 17.
신충(信忠) (1) 신라재상 신라 효성왕 때 중시가 되었다가 경덕왕 때 상대등으로 승진했지만, 자연재해로 물러났다.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 제9) 효성왕 : 3년(739) 봄 정월에 왕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당[祖考廟]에 참배했다. 중시 의충(義忠)이 죽었으므로 이찬 신충(信忠)을 중시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 제9) 경덕왕 : 16년(757) 봄 정월에 상대등 사인(思仁)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었으므로 이찬 신충(信忠)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22년(763)...가을 7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어 기와가 날라가고 나무가 뽑혔다. 8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다시 피었다. 상대등 신충(信忠)과 시중 김옹(金邕)이 관직에서 물러났다. 2018. 4. 17.
김유신론(6) 칠성파 두목 군사 분야에서 단연 압도적 두각을 드러낸 김유신은 선덕왕 말년에 발발한 비담의 난까지 계엄총사령관으로써 진압하는 한편, 그 작당 30명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최고실력자로 등극했으니, 진덕왕 재위기간(647~654)은 그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즉위한 진덕이 과연 여주(女主)로서 어느 정도 지도력을 발휘했는지는 미지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는지, 아니면 바로 앞선 시대 그의 사촌언니 선덕이 그랬듯이 주체로써 국정 운영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진덕왕 시대 신라는 소위 집단지도체제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는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음 《삼국유사》 기이편 '진덕왕(眞德王)' 다음 증언에서 비롯한다. 왕이 즉위한 시대에 알천공閼.. 2018.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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