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028 [천안 천흥사論] (3) 왕건이 성거산 오색구름을 본 수헐원愁歇院 우리는 앞서 고려 태조 왕건이 지금의 위례산을 바라보고는 신이神異한 오색 구름이 위에 이는 모습을 보고는 신성한 기운이 노니는 곳이라 해서 그 산을 성거산聖居山이라고 부르게 했다는 기록을 접했거니와 그 오색 구름을 본 장소를 신증新增에서 이르기를 직산현 서쪽 수헐원愁歇院이라 했다는 대목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곳에서 그가 동망 산상東望山上, 곧 동쪽으로 산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했으니, 곧 죽어도 수헐원이라는 데는 이 성거산(위례산)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어야 하며, 아울러 이곳에서 위례산이 보여야 한다. 이에 수월헌이 분포할 만한 대략의 범위를 지도에서 그리면 아래와 같다. 위례산, 곧 성거산을 기준으로 수헐원이라고 동글배기 친 어드메쯤에 수헐원이 있었을 것이다. 더 범위를 좁힌다면 수월원은 원院이라는.. 2021. 5. 19. [천안 천흥사論] (2) 고려~조선 성거산은 지금의 위례산 직산 성거산 아래 천흥사 존재를 증언하는 문헌으로는 언제나 신증동국승람을 인용하거니와, 그 권 제16 충청도忠淸道 직산현稷山縣을 기술하면서 그 산천山川과 관련해, 이를 둘러싼 산으로는 현縣 서쪽 3리 지점에 있으면서 이 고을 진산鎭山인 사산蛇山을 필두로 성거산聖居山, 양전산良田山, 망해산望海山을 들거니와 양전산良田山은 글자 그대로는 토질이 좋은 산이라는 뜻이며, 망해산望海山은 바다를 조망하는 산이라는 뜻이어니와, 이곳에서 바다를 볼 수 없거니와 그만큼 사방을 조망하기 좋다는 뜻에서 딴 것이 아닐까 한다. 저들 중에서도 성거산聖居山을 일러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在縣東二十一里。高麗太祖嘗駐蹕于縣西愁歇院,東望山上有五色雲,以爲有神祭之,遂稱聖居山。我太祖、世宗幸溫泉時,亦祭之。 고을 동쪽 21리에 있다. 고려 태조가.. 2021. 5. 19. 70년대에 부활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증보판 주인공은 무령왕릉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또 지금 봐도 사상 유례없는 호화양장의 거질 조선 고고미술 씨리즈다. 총기획은 조선총독부. 소위 식민사관의 본산과도 같은 뿌리로 분류된다. 조선 식민통치의 부산물이며 그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목적은 하늘이 두쪽 나도 부인할 수 없다. 문화재관리정책 치고 그렇지 아니한게 있던가? 일제 패망과 더불어 뒤안길로 사라진 이 고적도보가 느닷없이 1970년대에 부활한다. 똑같은 표지에 똑같은 양장으로 증보판을 낸 것이다. 총감독은 아리미쓰 교이치..유광교일有光敎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고적조사에 다년간 종사한 자로써 103세인가를 살고는 몇년 전 사망했다. 이 증보판 필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70년대에 부활한 조선고적도보 증보판 필자가 누군 줄 아는가? 이 증보판에.. 2021. 5. 19. 옛날 도서관의 주의사항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침칠을 마십시요" 2021. 5. 18. 사진으로 감상하는 고창 청보리밭 게을러 필설은 삼간다. 2021. 5. 18. 300t 크레인으로 옮긴 90t 고인돌 어랏? 위치가 바뀌었다. 지금은 고창고인돌박물관 정문 중앙지점에 갖다 놨다. 이전엔 그 인근 대략 백미터 정도 떨어진 유적 진입로 입구 대로변이었다. 이 큰 돌덩이를 어케 옮겼느냐니 고창군청 담당자 말이 가관이다. "돈으로 안되는 게 있간디요?" 삼백톤짜리 크레인을 동원해 옮겼단다. 이 계산리 고인돌에 대한 안내판 설명은 다음과 같다. Gyesan-ri Dolmen 鷄山里支石墓 이 고인돌은 2003년 농촌 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발굴 ·조사한 다음 학전리에 이전 복원하였다. 그 후 고창 고인돌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0년 4월에 고인돌박물관으로 이전하였으며, 형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초대형급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무게 90톤, 길이 6.5m, 너비 3.5m, 두께 3.4m) Thi.. 2021. 5. 18. 이전 1 ··· 2649 2650 2651 2652 2653 2654 2655 ··· 400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