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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한국의 고전을 번역하는 데인가? 한국에서 고전을 번역하는 데인가? 접때 민족문화추진회를 한국고전번역원을 확대 개편하는 움직임이 일고, 그것이 실제화했을 때, 나는 내심으로는 이 한국고전번역원을 '한국의 고전' 번역원이 아니라 '한국'의 '고전번역원'으로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자로 낙착이 되어 한국에서 발간된 한전만을 사업 대상으로 삼는 기관이 되었다. 내가 저리도 생각한 이유는 한국의 고전이라는 것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그리고 실제로도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원천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았다. 왜인가? 전선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심각하게 '한국의 고전' 번역원을 '한국'의 '고전번역원'으로 확대개편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중국의 고전과 일본의 고전과 베트남의 고전까지도.. 2022. 10. 10.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지은 기자오奇子敖(기 황후의 아버지) 행장 중에서 최이崔怡가 병들어 눕게 됨에, 그 아들 항沆이 못나고 어리석은데도 사람들이 대부분 항에게 빌붙었으나 복야僕射(기자오奇子敖의 할아버지 기홍영奇洪潁) 만은 그를 미워하였다. 최이가 언젠가 후계자를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에, 복야가 곧장 현인賢人을 천거하면서 그를 후계자로 하라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그 뒤에 항이 후계자가 되고 나서 예전의 유감을 풀려고 공을 배척하였다. 이에 공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니, 당시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 최이가 한 때 그 사위 김약선金若先을 후계자로 삼았던 게 이 때문이었던가? (2020. 10. 4) 2022. 10. 10.
규재圭齋 남병철南秉哲의 간찰 남병철(1817-1863)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게 누군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고위 관료였다. 이는 그의 타고난 재주와 더불어 그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점인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외손이라는 정치적 입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헌데 그러면서도 그는 동생 남병길(南秉吉, 1820-1869)과 함께 조선 후기를 주름잡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역사에 더 큰 발자취를 남겼다. 남병철이 서른일곱살 되던 1853년 음력 정월 16일 쓴 간찰이다. 남병철은 이날 경상감사에 제수되는데, 아마 교지를 받고 바로 썼던 듯 필치가 상당히 급하다. 수신인은 외종外從인 평안감사인데, 에 따르면 이때 평안감사는 김병기(金炳冀, 1815-1878).. 2022. 10. 10.
푹풍의 언덕 같던 2022 한글날 아스널은 리버풀을 잡았다 아마 전국적인 비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글날이자 일요일인 어제 내 부서는 푹풍의 언덕이었으니 뉴스컨텐츠팀은 온 화력을 경북대에 쏟아부었으니 그짝에서 대규모 Kpop콘서트가 열려 엑소 카이랑 아스트로 에이티즈 theboyz 같은 케이팝 최정상 가수 그룹이 총출동했으니 이를 시시각각 sns 계정과 홈페이지 기사로 탑재하는 소동을 벌였으니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체력을 소진방진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며칠 뒤엔 우리는 15일 부산 침공을 앞두고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에 나선 bts가 무료공연에 나설 예정이니 이짝은 전세계 한류팬들 눈길이 향하는 항구다. 영상팀은 정조 능행차 촬영하느라 아침부터 진을 뺀 상태서 오후엔 수송동 본사에서 인터뷰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난리를 쳤다. 편집과 국감이라는 여러 사정을 .. 2022. 10. 10.
부처님, 술 좀 마시고 다시 뵙겠습니다 讀終經一卷 불경 하나 읽기를 마침은 猶似出齋時 齋戒를 마친 때와 같아라 始可親觴酌 이제야 술 마실 수 있거늘 斟來何大遲 술상이 어찌 이리 늦는고 ㅡ이규보 (2015. 10. 8) *** 편집자 주 *** 부처님 육성을 담은 경전을 한 권 다 일고 나니 이때 기분은 마치 재계[齋]를 막 끝낸 때랑 비슷하단 말이다. 경전을 읽을 때는 경건해야 하며 이때는 모든 환락은 절제한다. 술을 끊고 여자도 접촉하지 않는다. 규보가 말하는 재계는 여러가지겠거니와 대표적으로 집안 혹은 국가 제사가 있어 이때는 임금도 심신을 정결히 해야 한다 해서 술을 금하고 육욕을 멀리했다. 술에 쩔어 사는 이규보한테 이는 고통이라 그것이 한시바삐 끝나기만 학수고대한다. 그 심정을 절묘하게 포착한 시다. 2022. 10. 9.
야호 유배 끝났다, 신나서 한라산 오른 면암 최익현 조선시대, 제주로 건너와 한라산 정상에 오른 이가 적지는 않았으련만 기행기를 남긴 이는 열 분도 안 된다. 그 기행기 중에서도 특히 명작으로 꼽히는 것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다. 수능 국어 고전문학 지문으로도 출제되었을 정도니 말해 무엇할까. 오늘날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거두이고 대마도까지 끌려가 순국한 지사로 기억되는 면암이다. 그런 만큼 그의 글도 성리性理를 논하는 거대한 담론에 그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세세한 데까지 그의 눈길이 닿아있고 트여있음에 놀라게 된다. 도 그런 글이다. 1875년(고종 12) 봄, 2년 남짓의 제주 유배에서 풀려 자유의 몸이 된 면암은 이 참에 한라산을 올라보기로 한다. 여러 날 걸려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굽어보고, 제주..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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