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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알(金武謁) 신라 나물왕 아들 보해가 고구려에 인질로 파견될 때 함께 따라간 관료. 그곳에서 같이 생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 제1 나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 : 눌지왕(訥祗王)이 즉위한 3년 기미(己未·419)에 고구려 장수왕의 사신이 와서 말했다. "우리 임금이 대왕의 아우 보해(寶海)가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서로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여 특히 소신(小臣)을 보내어 간청하는 바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이 일로 해서 화친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아우 보해를 고구려로 가게 했다. 그리고 내신(內臣) 김무알(金武謁)을 보좌(補佐)로 함께 보냈더니 장수왕도 그들을 억류해 두고 돌려 보내지 않았다. 2018. 4. 8.
박사람(朴娑覽) 신라 나물왕 아들 미해가 왜국에 인질로 파견될 때 따라간 관료. 그곳에서 같이 생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 제1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 : 제17대 나밀왕(那密王)이 즉위한 36년 경인(庚寅·390)에 왜왕(倭王)이 보낸 사신이 와서 말했다. "우리 임금이 대왕이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신 등으로 하여금 백제가 지은 죄를 대왕에게 아뢰게 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왕자 한 분을 보내서 우리 임금에게 신의를 표하게 하십시오." 이에 왕이 셋째아들 미해(美海·미토희라고도 한다)를 왜국에 보냈다. 이때 미해는 열 살이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이 아직 익숙하지 못했으므로 내신(內臣) 박사람(朴娑覽)을 부사(副使)로 삼아 딸려 보냈다. 왜왕은 이들을 30년 동안이나 억류.. 2018. 4. 8.
심●(深●)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년) 이름이다. 깨진 글자는 아마도 '麥' 혹은 '麥夫)일 것이다. 삼국유사 권1 왕력 : 제24대 진흥왕은 이름이 삼맥종(彡麥宗)이니, 심●(深●)이라고도 한다. 김씨다. 아버지는 곧 법흥왕 동생 입종(立宗) 갈문왕이고, 어머니는 지소(只召)부인으로, 식도부인(息道夫人)이라고도 하니, 박씨로 모량리 영실(英失) 각간의 딸이다. (第二十四代眞興王名 麥宗 一作深●, 金氏, 父卽法興之弟立宗葛文王 母只召夫人 一作 息道夫人 朴氏 牟梁里英失角干之女) ☞진흥왕(眞興王) ☞삼맥종(彡麥宗) ☞심맥부(心麥夫) 2018. 4. 8.
모진(募秦) 신라 제23대 법흥왕(재위 514~540) 이름이다. 당대 금석문에서는 모즉지(牟卽智)라 등장하기도 한다. 원종(原宗)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즉위년 : 법흥왕(法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책부원구(冊府元龜)》에는 성은 모(募)이고 이름은 진(秦)이라 했다). 지증왕 맏아들로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고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保刀夫人)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3대 법흥왕(法興王)은 이름이 원종(原宗)이다. 김씨다. 《책부원구(冊府元龜)》에 이르기를 성은 모(募)이며 이름은 진(秦)이라 했다. 아버지는 지정(智訂)이며 어머니는 영제부인(迎帝夫人)이다. 법흥(法興)은 시호다. 시호는 이에서 비롯된다. 갑오년에 즉위해 26년을 다스렸다... 2018. 4. 8.
재개관 국립춘천박물관 탐방 근자 두어 번 허탕을 쳤다. 재개관을 위한 전시실 리모델링 중이라 해서, 꽝꽝 닫힌 문을 뒤로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국립춘천박물관을 주말인 오늘 문득 찾아 나섰다. 점심을 겸한 아침상을 남영동 사저에서 마주할 때만 해도 뚜렷이 어디로 나서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막연히 오후엔 근교로 바람이나 쐬러 갔다와야겠단 생각만 스칠 뿐이었다. 마침 때늦은 꽃샘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날이라 멀리 움직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밥상을 마주하는데, 집사람이 오늘은 어디 나가지 않느냐 해서, 대뜸 나온 말이 "춘천 잠깐 다녀올까 한다"였으니, 그 말에 다시 집사름이 대뜸 "그럼 기차표 끊어주까?" 하기에 "그리하라" 말한 것이 오늘 춘천행을 결행한 계기였다. 밥상 머리에서 휴대폰으로 기차 사정을 보던 집사람.. 2018. 4. 7.
호불 정영호 박사 1주기를 맞아 내 페이스북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훑으니, 작년 오늘이 미술사학자 호불(豪佛) 정영호(鄭永鎬·1934~2017) 선생이 타계한 날이라, 관련 포스팅이 뜬다. 이날 나는 경주에 있었는지, 다음과 같은 짤막한 말로써 소식을 전했다. 《부고》호불 정영호 선생이 타계하셨습니다.자세한 소식은 추후 전하겠습니다.듣자니 오늘 경주에서는 그를 기리는 비석이 서는 모양인데, 그의 지인과 제자들이 주동이 되어 비석을 마련한 모양이며, 그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감포 이견대 인근일 것이다. 호불은 이곳에다가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1904~1944)과 초우(蕉雨) 황수영(黃壽永·1918~2010)과 수묵(樹默) 진홍섭(秦弘燮·1918~2010) 기념비를 세운 바 있다. 진홍섭 기념비가 맨나중에 섰는데, 그 한 쪽 .. 201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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