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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義相) 625~702년.. 원효와 더불어 신라 중기를 대표하는 고승이다. '義湘(의상)'이라고도 쓴다. 한반도 화엄종 개조로 통한다. 속성 김씨로 한신(韓信)의 아들이다. 29세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하고 원효(元曉)와 더불어 당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혼자서 갔다. 지엄 문하에서 현수와 더불어 화엄종을 연구하고 670년 귀국했다. 유학 중에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하고 그곳을 점령한 당군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본국에 전달했다. 귀국 후인 문무왕 16년(676)에는 왕명에 따라 부석사를 창건했다. 삼국사기 권 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6년(676) 봄 2월에 고승 의상(義相)이 왕명을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였다.삼국유사 권 제2 기이(紀異) 2 문호왕(文虎王) 법민(.. 2018. 3. 21.
빗금에서 선으로, 근대의 탄생 근대는 빗금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완충지대를 두지 않고 선으로 분할함으로써 경계를 확정하는 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근대의 핵심이다.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토지조사사업은 빗금에서 선으로 향하는 신호탄이다. 왜 선을 필요로 했는가? 쟁탈 때문이다. 그 쟁탈을 막기 위해선 요기까지, 저 언덕배기까지가 내 땅이라는 빗금의 추상을 바로 딱 이 선까지가 내 땅이라는 구상으로 해체해야 했다. 돌이켜 보면 경계에 선 사람 누구에게나 소유권을 허용한 빗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쟁투가 있었고 살인이 있었던가? 전근대 시대 이 빗금의 경계로 인한 대표적인 싸움이 있다.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다. 1712년(숙종 38), 조선과 청은 국경을 확정하고 그 징표로써 이 경계비를 세웠으니, 그 비면에 적힌 글을 보면 “烏喇摠管.. 2018. 3. 21.
지옥과도 같은 나날들 나는 미군 방위였다. 1987년 11월 20일, 논산훈련소 제30연대에 훈련병으로 입대해서는 한달간 교육받고, 같은 훈련소 30연대로 옮겨가 다시 한달 훈련을 받고, 평택 주한미군 군사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로 가서 그곳 카투사 훈련소인 KRTC에서 다시 한 달을 훈련받고는 석달 만에 미군 제501여단 산하 캠프 험프리스 제3정보대대에 배속되어 모학이라는 정찰기 정비소 Tool Room에 근무하고는 1990년 2월 15일,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이등병 월급은 4천원인가 5천원으로 기억하며, 제대할 당시 병장 월급은 만원이 채 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군번은 71131676이다. 용돈 마련을 위해 미군인지 한국군에서 지원하는 군사용품 무슨 kit인가는 자주 시장에 내다 팔았으며, 1년에 한 .. 2018. 3. 21.
무엇을 위한 대학의 고고학 발굴인가? 근자 어느 고고학도가 유명을 달리한 일이 있었으니, 나 역시 친분이 다대했던 고인이라 날벼락 같은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듣자니, 고인은 본인이 재직한 대학 부설 박물관이 수행한 발굴조사와 관련한 일로 각종 조사 혹은 감사를 받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것이 직접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참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작금 국내 고고학 발굴사정을 보면 관련 국가기관, 그리고 발굴전문 법인이 발굴을 전담한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한지는 실은 오래지 않았으니, 10년 전만, 혹은 대략 15년 전 이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발굴 절대를 대학박물관들이 수행했다. 발굴 현장에서 대학박물관이 도태된 것은 시대 흐름이었고 소명이었다. 이것이 이리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새.. 2018. 3. 21.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 실패에 부쳐 한양도성 등재 실패가 확정된 꼭 1년 전인 작년 3월 21일, 내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을 전재한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한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가 좌절했다. 한데 그 내용을 뜯어보면 한국이 세계유산 등재에 본격 나선 이래 그 포기 방식이 최악이다. 등재 서류를 심사하고 현지를 실사한 세계유산위 자문기구 이코모스는 한양도성에 대해 not inscribe로 결정했다. 이는 이코모스 평가 중에서도 최악이다. 이코모스는 해당 문화유산 후보를 네 단계로 정해 세계유산위에 보고한다. 최상위는 물론 inscribe라, 그 다음이 refer, 그 아래가 defer이고 최하위가 not inscribe다. not inscribe가 무엇인가? 등재 불가 판정이다. 해도 소용없다는 말이.. 2018. 3. 21.
아비지(阿非知) 신라가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울 적에 백제에서 초청된 기술자.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황룡사(皇龍寺) 구층탑(九層塔) :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16일에 자장법사가 당나라 황제가 준 불경(佛經)·불상(佛像)·가사(袈裟)·폐백(幣帛) 등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탑 세울 일을 임금에게 아뢰자 선덕왕이 여러 신하에게 이 일을 의논케 하니 신하들이 말하기를, "백제에서 공장이를 청해 데려와야 되겠습니다."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가서 청해 오게 했다. 이리하여 아비지(阿非知)라고 하는 공장이가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재고,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 절 기둥을 세우던 ..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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