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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말뚝박기 : 한문강독을 겸하여 현존 《장자》(莊子)는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의 모두 3개편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라. 이런 分章은 진(晉)나라 때 문사인 곽상(郭象. AD 252?~312)라는 자가 그 전대부터 전하는 《장자》 텍스트에 주석을 가한 《장자주》(莊子注)에서 비롯됐다. 이 《장자주》 이전 《장자》는 어떤 외양을 띠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자》란 모두 이 곽상이라는 사람에게 뿌리를 둔다. 따라서 일반 시중에 선보인 모든 《장자》 텍스트는 편의상 ‘현통용본’이라 할 수 있으니, 실상 현재의 통용본 《장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이 곽상이 손을 댄 《장자주》와 동일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장자》는 도교가 국교가 된 당나라 때는 매우 존숭을 받게 된다. 왜 당나라가 도교.. 2018. 2. 26.
쇠돌 엄마 기슈? 서가를 채운 책 중에는 대학시절에 사서 모은 게 일부나마 남아 있으니, 며칠 전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가 한 켠에 저번 이삿짐 싸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뭉탱이로 묶인 그 빛바랜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도 먼지가 덕지덕지 끼어 있어 작심하고 책을 닦았다. 잦은 자취생활, 1986년 서울 유학 개시 이후 언젠가 내가 이사한 횟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18 비스무리한 숫자가 나오더니, 그처럼 잦게 주거를 전전하는 동안에도 용케도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는 빛바랜 책들이다. 지금은 헌책방에나 가야 재수 좋게 만나게 되는 것들인데, 개중 한 책을 보니 1985년 글방문고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글방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동백꽃’이라는 단편소설집이라. 금광에 미쳐 요절한 강원도 춘천 출신 소설가요, 내 .. 2018. 2. 26.
술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었더니 중국 북송(北宋)시대를 살다간 광세(曠世)의 박학이요, 절세(絶世)의 천재로 심괄(沈括·1031~1095)이란 괴짜가 있었으니, 왕안석(王安石)이란 사람이 일으킨 일대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변법(變法)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참여한 그가 저술한 문헌으로 지금도 전하면서 널리 읽히고 있는 명저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을 지니라. 내 오늘은 이 땅의 주당(酒黨)들에게 이 책 한 구절에 수록된 어떤 고주망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하노라. 본론에 들어가기 전, 내 주위로 아래에서 말하는 주당과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폭탄주에 찌들어 사는 원시인들이 아직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더러 포진하고 있을 지니, 이 자리에서 내가 선배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이제부턴 인생 똑바로 살라고 훈계는 더 이상 못하겠노라. 대신 나.. 2018. 2. 26.
완당 김정희가 돌아가시매 : 조희룡의 만가 완당학사(阮堂學士)는 壽를 누리기를 71세이니 500년만에 다시 온 분이라네. 천상에서는 일찍이 반야(般若)의 業을 닦다가 인간세(人間世)에 잠시 재관(宰官)의 몸을 나셨네. 하악(河嶽)의 기운 쏟은 적 없으나 팔뚝 아래 금강필(金剛筆)은 신기(神氣)가 있었네. 무고무금(無古無今)한 경지로 별스런 길 열었으니 정신과 재능의 지극함이요 모두 종정운뢰(鍾鼎雲雷)의 문장이라네. 글씨 때문에 문장이 가리운 왕내사(王內史), 그와 천고(千古)와 같은 경우라네. 그 글씨의 흉중(胸中)의 구파(九派)와 교룡(蛟龍)의 노숙함은 주옥 같은 전분(典墳)과 진한(秦漢) 문장의 온축이라네. 승평(昇平)의 시대를 문채나게 함은 응당 이유가 있었으니 어찌하여 삿갓에 나막신 차림으로 비바람 맞으며 바다 밖의 문자를 증명했는가? 公.. 2018. 2. 26.
조희룡이 증언하는 김홍도와 그의 아들 조선후기 최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하지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 아래에 소개하는 조희룡이라는 당시 사람의 증언이다. 조희룡(趙凞龍·1789~1866)은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조희룡의 문집 중에 '김홍도전'(金弘道傳)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홍도(金弘道)는 字가 사능(士能)이요 號는 단원(檀園)이다. 아름다운 풍채와 태도에 마음은 활달하고 구애됨이 없어 사람들이 신선세계에 사는 인물이라 했다. 그가 그린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훼(花卉), 영모(翎毛)는 묘함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특히 신선(神仙)을 잘 그렸다. 준찰(?擦), 구염(句染), 구간(軀幹), 의문(衣紋)을 앞 사람들에게.. 2018. 2. 26.
스스로 눈을 찌른 칠칠이[七七이] 화가 최북崔北 최북은 字가 칠칠七七**이니 자 또한 기이하다. 산수와 가옥 및 나무를 잘 그리니 필치가 짙고 무게가 있었다. 황공망黃公望을 사숙私淑하더니 끝내는 자기의 독창적인 의경意境으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스스로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했다.사람됨이 격분을 잘 하며 외곬수였으며 자잘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일찍이 어떤 집에서 한 달관達官을 만난 일이 있다. 그 달관이 최북을 가리키면서 주인에게 묻기를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姓이 뭔가?”라고 하니 최북은 얼굴을 치켜들고 달간을 보면서 “먼저 묻건대 그대의 성은 무엇이오”라고 했다.최북의 오만함이 이와 같았다.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다가 구룡연九龍淵에 이른 그는 갑자기 “천하의 명사名士인 내가 천하의 명산名山에서 죽는 것이 족하다”고 소리치고는 못에 뛰어들었는데..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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