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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말(毛末)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박모말(朴毛末) ☞박제상(朴堤上) 2018. 2. 14.
물품(勿品) 박제상 아버지이자 갈문왕인 아도 아들로 정확한 활동연대는 알 수 없지만, 내물왕 혹은 그 이전이다. 최고 관위는 파진찬이다.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 2018. 2. 14.
홍유후(弘儒侯) 유학의 큰 선비로 후작에 봉해진 인물이란 뜻인데, 고려시대에 최치원을 높여 추증한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우리 현종 재위 13년 천희(天禧) 5년 신유(1021)에 이르러 (설총은)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었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설총이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나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설총(薛聰) 2018. 2. 14.
설총(薛聰)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배우지 않고도 도술(道術)을 알았고, 방언(方言)으로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므로 지금[고려]까지 학자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또 능히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고려]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마멸되고 떨어져나가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의 글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2018. 2. 14.
가실(嘉實)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설씨녀(薛氏女)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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