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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도 같은 나날들 나는 미군 방위였다. 1987년 11월 20일, 논산훈련소 제30연대에 훈련병으로 입대해서는 한달간 교육받고, 같은 훈련소 30연대로 옮겨가 다시 한달 훈련을 받고, 평택 주한미군 군사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로 가서 그곳 카투사 훈련소인 KRTC에서 다시 한 달을 훈련받고는 석달 만에 미군 제501여단 산하 캠프 험프리스 제3정보대대에 배속되어 모학이라는 정찰기 정비소 Tool Room에 근무하고는 1990년 2월 15일,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이등병 월급은 4천원인가 5천원으로 기억하며, 제대할 당시 병장 월급은 만원이 채 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군번은 71131676이다. 용돈 마련을 위해 미군인지 한국군에서 지원하는 군사용품 무슨 kit인가는 자주 시장에 내다 팔았으며, 1년에 한 .. 2018. 3. 21.
무엇을 위한 대학의 고고학 발굴인가? 근자 어느 고고학도가 유명을 달리한 일이 있었으니, 나 역시 친분이 다대했던 고인이라 날벼락 같은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듣자니, 고인은 본인이 재직한 대학 부설 박물관이 수행한 발굴조사와 관련한 일로 각종 조사 혹은 감사를 받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것이 직접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참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작금 국내 고고학 발굴사정을 보면 관련 국가기관, 그리고 발굴전문 법인이 발굴을 전담한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한지는 실은 오래지 않았으니, 10년 전만, 혹은 대략 15년 전 이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발굴 절대를 대학박물관들이 수행했다. 발굴 현장에서 대학박물관이 도태된 것은 시대 흐름이었고 소명이었다. 이것이 이리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새.. 2018. 3. 21.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 실패에 부쳐 한양도성 등재 실패가 확정된 꼭 1년 전인 작년 3월 21일, 내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을 전재한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한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가 좌절했다. 한데 그 내용을 뜯어보면 한국이 세계유산 등재에 본격 나선 이래 그 포기 방식이 최악이다. 등재 서류를 심사하고 현지를 실사한 세계유산위 자문기구 이코모스는 한양도성에 대해 not inscribe로 결정했다. 이는 이코모스 평가 중에서도 최악이다. 이코모스는 해당 문화유산 후보를 네 단계로 정해 세계유산위에 보고한다. 최상위는 물론 inscribe라, 그 다음이 refer, 그 아래가 defer이고 최하위가 not inscribe다. not inscribe가 무엇인가? 등재 불가 판정이다. 해도 소용없다는 말이.. 2018. 3. 21.
아비지(阿非知) 신라가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울 적에 백제에서 초청된 기술자.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황룡사(皇龍寺) 구층탑(九層塔) :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16일에 자장법사가 당나라 황제가 준 불경(佛經)·불상(佛像)·가사(袈裟)·폐백(幣帛) 등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탑 세울 일을 임금에게 아뢰자 선덕왕이 여러 신하에게 이 일을 의논케 하니 신하들이 말하기를, "백제에서 공장이를 청해 데려와야 되겠습니다."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가서 청해 오게 했다. 이리하여 아비지(阿非知)라고 하는 공장이가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재고,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 절 기둥을 세우던 .. 2018. 3. 21.
서동(薯童)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을 가리키는 즉위 전 이름일 수 있다. 글자 그대로는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인데, 실제 어릴 때는 마를 캐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컬은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름으로 말통이 있는데 이는 마동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무왕(武王) : 제30대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여]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선화善化)가 뛰어나게 아.. 2018. 3. 21.
선화(善化) 신라 진평왕 셋째딸로 백제 무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여인으로 '善花'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무왕(武王) : 제30대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여]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혹은 선화善化)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선화(善花)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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