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382 고대 동아시아 역사를 아주 쉽게 이해하는 법 古代東アジアの歴史を非常に簡単に理解する方法 百濟 = Lotte 王國 昆支王 = 辛格浩(重光武雄)武寧王 = 辛東彬(重光昭夫) 金正恩 = 淵蓋蘇文勞動新聞 = 日本書紀 唐 = 美合衆國 唐太宗 李世民 = Donald Trump 美合衆國大統領 朝貢·冊封 = 核廢棄·安全保障 2019. 1. 6.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기(息影亭記)〉 기호철 원문 교정하고 번역하며 해설함 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기(息影亭記)〉 1. 원문 息影亭記 金君剛叔吾友也,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得一麓,構小亭,柱其隅,空其中,苫以白茅,翼以凉簟,望之如羽盖畫舫,以爲吾休息之所,請名於先生。先生曰:“汝聞莊氏之言乎?周之言曰‘昔者畏影者,走日下,其走愈急而影終不息,及就樹陰下,影忽不見。’夫影之爲物,一隨人形,人俯則俯,人仰則仰,其他往來行止,惟形之爲。然陰與夜則無,火與晝則生,人之處世亦此類也。古語有之曰‘夢幻泡影’。人之生也,受形於造物,造物之弄戲人,豈止形之使影?影之千變,在形之處分,人之千變,亦在造物之處分。爲人者當隨造物之使,於吾何與哉!朝富而暮貧,昔貴而今賤,皆造化兒爐錘中事也。以吾一身觀之,昔之峨冠大帶出入金馬玉堂,今之竹杖芒鞋逍遙蒼松白石,五鼎之棄而一瓢之甘,皐夔之絶而麋鹿之伴。此皆有物弄戲其間.. 2019. 1. 6. 백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판독 재고( 百濟武寧王陵出土誌石と買地券判讀再考) 백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판독 재고百濟武寧王陵出土誌石と買地券判讀再考 김영관 忠北大學校 史學科 敎授 出典 : 《韓國古代史探究》 30, 韓國古代史探究學會, 2018, 12. 【抄錄】이 논문은 1971년 발굴된 이후 일치된 견해를 내지 못한 부령왕릉 출토 왕과 왕비의 지석과 매지권을 새롭게 판독하고 해석한 결과이다. 그 결과 무령왕 지석의 맨 마지막 글자 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었다. 무령왕 지석의 마지막 글자는 '穴‘, ‘冢’, ‘印’, ‘家’ 등으로 판독해 왔으나, ‘尔’로 판독했다. 무령왕비 지석 중 과거에 ‘大妃’로 판독했던 글자는 ‘太妃'임을 밝혔다. 매지권 중에서 "百濟斯麻" 다음에 오는 글자는 '王'이 아니라 '主'라는 것을 찾아냈다. 아울러 ‘訟' ‘詣' '詴' ‘.. 2019. 1. 6.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4)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시대 한성부의 인구 밀도를 생각하면 당시 토양이 기생충란에 오염이 많이 되어 있는 상태는 당연한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토양이 기생충란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은 한성부에 살던 사람들이 그 기생충에 많이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기생충에 계속 반복적으로 감염되었을까? 조선시대 한성부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기생충 감염률이 높게 유지되는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현대 임상의학에서는 어떤 감염성 질환이 발생했을때 감염경로 및 감염원를 판단하기 위해 해당 환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이것을 역학조사 (epidemiological study) 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시대 한성부 토양.. 2019. 1. 6. 흰옷 입은 선녀가 새로 걸친 옷 납매 한시, 계절의 노래(235) 납매(臘梅) [宋] 정강중(鄭剛中) / 김영문 選譯評 흰옷 입던 선녀가새 옷으로 바꾼 듯 봄에 앞서 은은하게노란색으로 물들였네 교교한 섣달 눈과다투려 하지 않고 고독한 어여쁨을그윽한 향에 덧붙일 뿐 縞衣仙子變新裝, 淺染春前一樣黃. 不肯皎然爭臘雪, 只將孤艶付幽香. 섣달에 피는 매화라 납매(臘梅)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원산이라 당매(唐梅)라고도 부른다. 납(臘)은 납월(臘月) 즉 음력 12월이다. 그러나 개화 시기는 좀 길어서 대개 동짓달에서 정월까지 꽃을 피운다. 색깔은 노란색이며 향기가 진하다. 남쪽에는 납매가 피었거나 곧 필 것이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 매화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소속은 매화와 다르다. 즉 매화는 장미과지만 납매는 납매과에 속한다. 중국에 있을 때 겨울에 .. 2019. 1. 6. 정민하(鄭敏河, 1671~1754)〈식영정기(息影亭記)〉 번역 및 해제 : 기호철 ( 독학하는 장성 독거노인 ) 해제 : 담양 식영정기는 그간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쓴 기문만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임억령이 사위인 김성원(金成遠)의 정자를 빌려 몇 년 사용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 쓴 〈식영정기(息影亭記)〉는 그 나름으로 식영정 역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이 말하는 식영정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는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모가 크게 변했다. 임억령 시대 식영정은 이후 언제인지 사라지고 200년 가까이 그곳은 빈터로 남았다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후손들이 식영정 터를 매입해 정자를 새로이 짓고 중건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 직접 연결된다. 식영정 중건기를 송강.. 2019. 1. 5. 이전 1 ··· 3517 3518 3519 3520 3521 3522 3523 ··· 389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