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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임금이 읊은 북한산성시 6수 번역 : 기호철 ( 장성 독거노인) 임진년(1712, 숙종 38) 4월 10일에 숙종(肅宗)이 북한산성(北漢山城)에 행행(幸行)하여 성첩(城堞)을 두루 관람하고 천혜의 험준함에 감탄하며 시 6수를 지었다. 1. 전쟁에 대비해 마련한 새 산성에 행행하려새벽에 나선 남문엔 북과 나팔 울려퍼지네용맹한 기병 수천명 대오 나누어 호가하니훈훈한 바람에 해는 길어져 여름이 되었네 計深陰雨幸新城曉出南門鼓角嗚驍騎數千分扈蹕風熏日永屬朱明 2. 서문 초입에서 한번 고개 돌려 돌아보니기운솟고 뜻 웅장해져 내 근심 사라지네도성 지척에 금성탕지 같은 성 굳건한데어찌 우리 백성 지키는 서울을 버리겠소 西門初入一回頭氣壯心䧺寫我憂國都咫尺金湯固何棄吾民守漢州 3. 어렵사리 십리 가서 행궁 이르니 우뚝한 시단봉 바로 아래 동쪽이라 노적봉 꼭.. 2019. 1. 5.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읽는 듯 하기에 나 역시 그 대열에서 이탈해 낙오하는 듯 하고, 그래서 나 역시 무턱대고 읽어야겠단 윽박 하나로 꾸역꾸역 손을 대고선 기어이 독파는 했지만, 그때나, 또, 30여 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에서 격발한 단 한 구절도 남지 않은 그런 책이 있다. 광대 공연 뒷줄에 섰다가 그 광대 무슨 공연하는 줄로 모른 채, 앞줄에 늘어서 가린 군중이 왁자지껄 박수치니깐 나도 따라 무턱대고 박수치며 장단 맞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광대였다. 우리 시대엔 그냥 아미자라 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찾는 이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이 되어 소리소문없이, 나는 간단 말도 없이 그리 퇴장하고 말았다. 고골리의 시대가 있었다. 그땐 그랬다. 고골리를 알아야 하.. 2019. 1. 5.
우레 치니 침묵하는 말떼를 격분하며 한시, 계절의 노래(234) 기해잡시(己亥雜詩) 220 [淸] 공자진(龔自珍) / 김영문 選譯評 온 세상의 생기는폭풍 우레에 기대는데 말떼는 모두 침묵서글픈 세상일세 하느님께 권하노니다시 힘을 떨치시어 한 격식만 구애 말고두루 인재 내리소서 九州生氣恃風雷, 萬馬齊喑究可哀. 我勸天公重抖擻, 不拘一格降人才. 중국에서 근대를 거론할 때는 반드시 공자진에게서 시작한다. 그런데 공자진은 중국 근대의 시작이라고 하는 아편전쟁(1840) 한 해 뒤(1841)에 죽었다. 이렇게 보면 공자진은 최후의 고대인이면서 최초의 근대인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는 유명한 문자학자 단옥재(段玉裁)의 외손자로, 청나라 말기에 유행한 공양학(公羊學)의 입장에 서서 중국 자체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를 열망했다. 우리나라의 성호 이익이나.. 2019. 1. 5.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扶餘扶蘇山城出土金銅光背)에 대한 나의 중간 결론 1. 扶餘 扶蘇山城 東門址 出土 金銅光背 뒷면 銘文은 ‘何多宜藏治佛’이며, 그 意味는 “하다의장(何多宜藏)이라는 사람이 佛像을 造成했다”는 뜻이다. 이를 從來에는 ‘何多宜藏法師’라고 읽은 것은 明白한 誤讀이다. 2. 이 金銅光背를 裝着한 佛像을 만든 ‘何多宜藏’은 6~7世紀, 主로 佛像을 만드는 일에 專門的으로 從事한 匠人 姓과 이름이다. ‘何多’가 姓氏다. 3. 이는 古代 日本에 登場하는 韓半島 渡來系 有力 家門 중 하나인 ‘하타씨[秦氏]’의 由來, 或은 性格을 가늠하는데 매우 重大할 수 있다. 4. 古代 日本 姓氏 ‘秦’는 百濟에서 渡來한 家門이다. 5. 秦氏는 日本書紀와 新撰姓氏錄 等의 古代 日本 文獻을 보면, 韓半島系 渡來人 중 弓月君을 始祖로 삼거니와, ‘弓月’에 대한 古代 韓國語 옮김이 바로 .. 2019. 1. 5.
금관가야의 마지막 유산 김해 원지리 고분군(1) 그 지리 특징과 의미 金官加耶の最後の遺産 金海元支里古墳群(1)その地理特徴と意味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 2-2번지를 표시한 다음 지도다. 이를 같은 지도 스카이뷰로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기로 한다. 이곳에 우리가 찾는 금관가야시대 무덤이 떼로 분포하는 까닭이다. 김해 시내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치우친 북쪽 지점에 위치함을 안다. 낙동강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동남쪽으로 크게 감돌아 흐르는 지점이다. 지금의 김해 시내는 그 동남쪽으로 평야지대에 자리잡았음을 본다. 원지리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그 안쪽 산야 지대 한쪽 끄터러미를 차지했음을 확인한다. 뭐 딱 봐도 김해 시내를 중심으로 자리잡았을 왕조가 있다면, 그들에게 이곳은 북망산 자락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니 김해 시내 서북쪽 귀퉁이 지점 계곡간을 들어간 지점임.. 2019. 1. 5.
서울 사대문 안 지하 4미터의 비밀 (3) 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20세기 이전 사람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면 어딜까. 역시 행정 수도인 백제 사비성, 신라 경주 (월성 해자) 등을 들 수 있겠고, 행정치소 역할을 한 삼국시대 산성도 이에 포함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역에 대해 고기생충학 검사를 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발굴 현장 옛 지층에서 당시 기생충란이 많이 발견되었다. 사실 그 당시 인구가 고도로 밀집된 지역에 살면 회충, 편충 등 기생충란이 토양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그 만큼 기생충 감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더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기생충 감염에 대한 의학적 지식 수준이 낮고 예방법이나 치료법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그 시대에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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