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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글씨가 커진 이유, 안경이라는 혁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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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걸친 음란서생

 
조선 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이라는 사람이 있다.

1516년, 중종中宗 11년에 나서, 과거 급제하고는 출세가도를 달려 훗날 좌의정까지 역임하고는 장장 84세 장수를 누리다가 1599년, 선조 32년 눈을 감았다. 

말년에 임진왜란에 휘말렸으니, 그리 호락호락한 삶은 아니었다 하겠거니와, 그럼에도 천수를 누렸다. 

그의 저술 중에 일상생활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 묶음집으로 견한잡록遣閑雜錄이라 제題한 것이 있으니,

글자 그대로 여가를 보내며 이것저것 긁어모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이다. 

개중에 아래와 같은 논급이 보인다.  
 

육방옹陸放翁은 이름이 유游이며, 자字는 무관務觀이라 송宋 나라 이름난 시인이다.

그의 시는 호방하고 평이하여 난삽難澁하고 기괴奇怪한 병통이 없으므로, 내가 전부터 좋아했다.


우연히 유간곡劉澗谷이 (그의 시 중에서 추려서) 정밀히 뽑은 (시집) 한 부를 얻었는데, 이는 판서 성임成任이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간직한 것을 등사해 인쇄한 판본이다.

한데 다만 글자가 적어서 노안老眼에 합당치 못하기에 글씨 잘 쓰는 친구 안한安翰에게 청하여 등사하고는 보기에 편리하게 만들었다. 

시들은 늙어서 지은 지은 것이 많은데 지금 안공安公과 나도 80이 넘었으니, 노인이 지은 시를 노인이 등사하고 또 노인이 보는 것은 하나의 기이한 일이다.

육방옹은 벼슬이 예부 낭중 보장각 대제禮部郞中寶章閣待制로 있다가 치사致仕해 죽으니 향년享年 85세였다. 
 

이 평이한 증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여럿이라,

첫째 책이 생기는 유통 경로 중 하나를 엿보이며 

둘째 왜 우리네 전통시대 출판물이 그렇게 대자大字로 인쇄한 것이 많은가를 폭로하며 

셋째 안경이 왜 혁명인지를 말해 준다는 데 있다 하겠다. 

심수경은 팔순 넘어 편안히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더 늦게 태어나야 했다.

대략 영정조 어간에만 태어났더라도 저런 고생은 사서 하지도 않아도 되었으니 안경이 그 무렵에 본격 조선에 등장한 까닭이다. 

안경이 없던 시절, 아니 더욱 정확히는 그런 안경이 조선에 알려지지 않은 시대에는

노안을 이기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해서 글자를 키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왜 글자가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작아졌는가?

안경 때문이다. 

안경은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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