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조사고 뭐고 저 위치를 보아주기 바란다.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포진하는 팔거산성을 중심으로 그 중턱으로 신라시대 무덤들이 포진한다.
팔거산성은 이미 중심부를 다 파고, 그에서 나온 연못 나무 구조물들은 보존처리한다고 다 뽑아갔다.
다 좋다.
저런 데를 굳이 발굴조사를 해야겠는가?
산사태 부르기 십상인 곳이다. 더구나 그 아래에는 집이 밀집한다.
나는 기후변화 시대에 즈음해 더는 이제 저런 산성 혹은 산 소재 무덤 발굴은 그만해야 한다는 말 줄기차게 한다.
각설하고 대구광역시 북구청이 국가유산청 허가를 받아[허가해준 국가유산청이 얼이 빠졌다고 봐야 한다] (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사적 대구 북구 구암동 고분군 중
제100~102호분이라고 명명한 무덤들 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하거니와,
그 현장도 그에 즈음해 주민들한테 보여준다고 한다.
이들 세 무덤은 서로 다닥다닥 붙었으니 구암동 고분군에 포진하는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기는 하지만 여러 차례 도굴 피해를 봐서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저와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2019년 종합정비계획를 수립하고 그것을 근거로 2023년 100호분 발굴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 이래 101, 102호분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무덤들은 칠곡분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고 산 아래에서도 우뚝하게 보이는 탁월한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라 한다.
조사 결과 무덤들을 만든 순서가 102호→100호→101-A호→101-B호분으로 나타났댄다.
이건 어찌 아는가?
무덤끼리 연결된 지점 흙을 파 보면 바보가 아니라면 안다.
나중에 만든 무덤이 먼저 만든 무덤을 파고 들어가지 않겠는가?
100호분과 102호분은 봉분 기준 지름이 약 25m, 높이는 6~7m 정도로 규모가 꽤 된다.
결국 이 지역에서 떵떵거리며 산 사람들이 묻힌 곳이지 않겠는가?
외지인에 느닷없이 와서 묻힐 리는 만무하고, 또 경주에서 파견된 중앙정부 관리들이야 설사 현지 복무 중에 죽는다 해도 관짝 지고선 고향 경주로 돌아가 장사를 지낼 것이니,
이곳에 묻힌 사람들이야 당연히 지역 토호 아니겠는가?
조사단은 앞서 발굴한 무덤들에 견주어 이번 조사 대상 무덤들은 석재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고, 구암동 고분군에서는 처음으로 주곽 1기에 부곽 2기가 세트를 이루는 평면 형태 ‘111’자형 배치가 확인됐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간단하다 그림 한 장으로 충분하다.

이거다. 보다시피 가운데 구덩이가 젤로 길다.
당연히 저곳에 무덤 주인공이 묻혔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무덤 구덩이 중에서도 메인이 된다 해서 주곽主槨이라 부른다.
곽槨이란 흔히 덧널을 말하는 것으로 시신을 직접 매장하는 널[棺]을 감싸는 바깥 관을 말한다.
시신은 어찌됐건 나무 관에다가 넣고서 저 구덩이에 넣지 않았을까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저 명칭은 부적절하다.
암튼 그 시체 매장 공간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다가 그 메인 공간과 나란한 방향으로 껴묻거리를 집중 배치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으니, 그래서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111처럼 보인다 해서 저런 명칭을 쓴 것이다.
이 양상은 이번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이전 발표에서 이미 했다고 기억한다.
보는 이 기준 왼쪽 편 구덩이 머리맡에 보면 방향 지시등이 보인다.
화살표가 북쪽을 가르킨다. 그러니 저 무덤 저 공간은 장축을 남북방향으로 마련했다.
시신은 북쪽에다가 머리를 두었을 것이다.
저 내부에서는 유개고배有蓋高杯를 비롯한 테라코타 그릇류, 금동제 귀걸이와 같은 장신구 제품, 발등거리와 같은 마구류 를 포함하는 여러 유물이 출토됐다고 한다.
이걸로 보면 몽땅 도굴당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유물로 볼 때 이 무덤을 만든 시점은 5세기 말 내지 6세기 초라 본다 하니, 대략 서기 500년 무렵, 신라 소지왕 내지 지증왕 무렵에 만들었을 본다.
만든지 대략 1천500년 됐다.
조사단은 비록 도굴 피해가 극심해 무덤 주인공 위세를 나타내는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지만
탁월한 입지, 다량 사용한 석재, 봉분 규모 등으로 미뤄볼 때
이곳에 묻힌 사람은 구암동 고분군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팔거리 집단 수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했거니와 이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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