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를 막론하고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판국이라,
박물관 미술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일전에 근현대사 관련 유물 구입심사를 간 적 있는데, 요새 하도 근현대사 관련 박물관 혹은 준박물관이 우후죽순마냥 생기는 통에 이제 쓸 만한 유물은 씨가 말랐다 볼멘소리가 터져나왔으니 실제 쓸 만한 물건이 없었다.
쓸 만한 것들은 이제 다 쓸어가버렸으며, 근대 서지학 자료만 해도 제법 쓸 만한 자료들이 나왔지만
이젠 것도 씨가 말라서 유물로 구입해 달라 들어오는 서지학 자료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으니
다른 박물관에 문의해도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웃긴 것이 가뜩이나 적은 유물구입비가 기관 사정에 따라 쓸 만한 물건을 매입하지 못하는 바람에 남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신생 국립일수록 더하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공립박물관에 견주어 사정이 나은 편이라 하지만,
그 쥐꼬리만한 유물구입비도 쓸 만한 물건이 없어 하반기가 되면 유물 구입비를 어찌 쓰야 하는지 고민하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 쥐꽁 만한 나라에서 자료라 해 봐야 얼마나 남았겠는가?
그나마 쓸 만한 자료들은 소문날 대로 다 나서 다 쓸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내 기억에 근대 문학 자료는 10년 전만 해도 제법 쓸 만한 것이 많이 나왔지만 지금은 쓰레기 천지다.
물론 쓰레기라는 관점이 또 다른 논란을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무슨 잡지 창간호니, 무슨 시집 초판본이니 해서 억대를 호가했지만
요새는 억대를 주어도 저런 자료가 없다.
이광수 무정인가는 아직도 초판을 못찾은 것으로 아는데, 이거 혹 집안에 꼬불쳐 둔 사람 있음 나한테 말해라.
10억원 받아둘 테니 내가 소개비로 1억만 떼어갈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저런 희귀자료를 소장했을 법한 1세대 2세대 연구자 혹은 문필가들이 이미 거의 다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그네들이 사망하면서 후손이 그 재고를 처분하면서 희귀본이 쏟아지는데,
이것도 이미 2세대까지 다 떠난 마당에 이젠 새로운 자료가 나올 구석이 없다.
3세대 이하 중에 생존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들은 이미 초판본 세대가 아니라서, 쓸 만한 자료는 그네들 당대 자료밖에 없고 그 전시대 자료는 이미 1, 2세대가 다 소진해 버렸다.
이럴 줄 알았더래면 한때 책 수집광이었던 나 역시 이런 미래를 내다보고 그런 희귀본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싼 시절에 몇 종이라도 수장해 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 패가 망신하는 사람 너무 많이 봤으니, 그래서 나는 책 수집광이기는 해도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그런 희귀본들은 보고서도 아주 멀리했으니 지금 이나마 버티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서재 뒤지면 희귀본이 아주 없기는 하겠는가?
더러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또 아주 가끔씩 필요한 사람한테 선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몇몇 희귀종은 있다.
그렇다고 아주 비싼 것은 아니니 도둑님들이 내 서재 털 생각을 마라. 본전도 못 뽑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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