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國之大事, 在祀與戎 [국가의 큰 일이란 제사와 전쟁 두 가지에 있다.]
이 유명한 말은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13년 항목에 보이거니와, 그만큼 전통 왕조시대에 저 두 가지 일이 크다는 뜻이다.
실제 왕이라고 하지만 생평 하는 일이라고는 맨날맨날 제사만 지내다 볼짱 다보고 훅 간다.
왕조가 오래일수록 왕이 돌아버리는데 그만큼 제사를 지내야 하는 조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제사에서 그나마 해방되려면 내가 왕조를 세우거나 그 다음 혹은 다다음 왕 정도 하면 좋다.
고종?
지 앞에 죽은 왕만 26명인가 25명이 있어 맨날맨날 제사 지내다 일년 다 보냈다.
꼭 왕뿐인가? 왕비도 있지 해서 정말 돌아돌아버린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왕이 하는 일이라고는 없다.
그냥 세수 적당히 하고 입혀주는 옷 입고 나가서 절 하라 하면 하고 나오라 하면 나오면 그만이다.

그러고선 음복 한두 잔 때리면서 신하들한테 니들 배고플 테니, 그리고 내가 연봉도 못 올려줘서 미안한데 저기 저 젯상 소고기나 나누어 가져가고 떡도 가져가고 하시오
이런 개똥품 내니 실상 뭐 뚜렷이 피곤한 일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게 문제가 無섹스라는 데 돌아버리는 함정이 있다.
보통 제사를 앞두고 사흘간인가는 정화하는 기간으로 쳐서 각종 쇼를 한다.
행동을 근신하고 무엇보다 색을 멀리해야 한다 해서 그걸 좀 참아야 하지만, 이거 제대로 지킨 왕 드물다.
섹스라는 게 그렇다. 저리 평소 주지육림에 살다가는 오늘은 그리고 내일은 쉬고 싶다가도, 남이 하지 말라 하면 꼭 땡기는 게 섹스다.
그런 점에서 제사는 준비하는 사람들한테 이 일이 고통이다.
요새 말하는 명절 증후군이 바로 그것이다.
한데 이것도 곰곰 생각하면 저런 국가의 큰 제사에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꼭 떡고물을 챙기기 마련이라 꼭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왜? 삥땅칠 절호의 기회니깐 말이다.
이 삥땅은 꼭 불법이라 할 수도 없었다.
제사 음식 준비하다 짜투리 남는 음식은 싸갔고, 혹은 그걸로 배를 채우기도 했으니 말이다.

전통시대 제사와 같은 행사는 저를 준비하는 사람들한테는 고통이기도 했지만 따라서 그걸 기다리는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요새 이벤트? 준비하는 사람들이 고통이라지만 꼭 그런가? 행사 실무담장자들만 죽어날 뿐이지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 얼마나 많은가?
그걸로 생업 꾸려가는 사람 도대체 몇인지 모른다. 그래서 저런 행사가 많아야 국가 경제가 돌아간다.
저 제사 말이다.
나는 전통시대와 현대시대를 다 겪는 사람이라
저 제사를 실은 어릴 적에는 그렇게 기다렸다.
준비야 어차피 엄마랑 누나들이 하니 나는 룰루랄라 꾸버 놓은 적이나 먹어주면 그만이었고,
젯상에 올릴 막걸리, 아니다 젯상에는 안 올렸다. 제사 참여하는 사람들 음복한다 해서
그 막걸리 받아오라 해서 그거 양재기 주전자 딸랑딸랑 들고 술도가에 가서 받아오는 일이 귀찮기는 했지만
내가 지금도 술을 못 먹지만 그때도 마시지를 못했지만,
그래도 사카린 타서 마시는 막걸리는 기가 차서 그거 마시고 헤롱헤롱한 일도 많았으니
각설하고 제사가 기다려졌으니, 특히 한식날은 대목이었다.

이 한식날 동네 천지사방 묘자리마다 제사지내는 집안 천지라,
하얀 도포자루 걸친 사람들이 보이는 곳을 가면 제사 지낸 음식, 떡종류를 다 나눠주는 전통이 있었으니,
그렇게 얻으러 간다 해도 그것이 구걸이 아닌 시대였으니 그날은 진짜로 배불러 터지게 먹었다.
이 전통시대 제상을 논할 때 고고학에서 조심해야 할 대목은 요새 고고과학이 결합해서 주로 무덤 쪽 발굴성과를 중심으로 그에는 제사 음식이 반드시 포함되기 마련이라
그 분석들을 근거로 당시 사람들이 무얼 먹었네 마네 하는 연구 아닌 연구(이는 보고지 연구가 아니다)가 한창 유행이었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거니와
그래서 경상도 쪽 사정을 보면 심지어 상어까지 발견되거니아 그래서 상어고기를 먹었다?
웃기는 소리 그만들 해야 한다.
그래 먹을 수는 있었지만 그걸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신라인 100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것이 일상 음식이 아니라는 평범성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그건 제상이다.
왜 내가 어릴 시절 제사를 기다렸겠는가?
생평 보도듣도 못한 음식이 오르는 유일한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때는 일년에 한두 번 구경하고 먹어보는 조기도 올랐다.
그렇다고 내가 조기를 평소에 맨날맨날 먹었는가?
웃기는 얘기 그만하세요.
일년에 한두 번 먹었다.
김? 단오날 딱 한 번 먹었다.
제상은 그런 것이다.
그 제상이 그 시대 소비된 음식을 보여주기는 하나 그것이 일상음식은 아니라는 사실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제사가 왜 현대 사회에서 퇴출되는가?
기독교 영향도 있겠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먹을 것이 많은 이 시대에 제사가 주던 최대 강점,
곧 평소에는 도저히 엄두도 못내던 술과 음식을 이제는 너무 일상에서 흔하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명절증후군?
제수를 준비하는 사람도,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다 피곤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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