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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미라 너머, 뼈를 남긴 사람들

민중이 열광한 도둑 쉰더한네스, 그의 유골 이야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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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더한네스와 그의 유골

 

Schinderhannes Identified After 220-Year-Old Skeleton Confusion. A centuries-old mystery has finally been unraveled, revealing the true identity behind a misidentified skeleton. 

쉰더한네스, 220년 된 유골 정체 밝혀져

수세기 동안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가 마침내 풀려나, 잘못 식별된 유골 진짜 정체가 드러났다.

오랫동안 범죄자 "슈바르처 요나스Schwarzer Jonas"(검은 조나스)의 것으로 여겨진 이 유골은 이제 악명 높은 독일 도적 요하네스 뷔클러Johannes Bückler, 즉 쉰더한네스Schinderhannes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제 연구팀이 활용한 첨단 법의학 기술 덕분에 이러한 역사적 혼동은 바로잡혔다.

한편, 슈바르처 요나스의 실제 유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뭐 밝혀졌다 해서 좋아라 할 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구만?

이런 건 밝혀지지 아니하는 게 좋지 않은가? 

그렇담 Johannes Bückler(c. 1778~1803)는 누구인가? 

그는 독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범죄 행각 중 하나를 조직한 독일 무법자였다. 독일어로 Schinderhannes와 Schinnerhannes(발음 [ˈʃɪn(d)ɐˌhanəs])라는 별명이 붙었고 영어로는 John the Scorcher, John the Flayer, the Robber of the Rhine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요한Johann과 안나 마리아Anna Maria 뷔클러 아들로 미엘렌Miehlen에서 태어났다. 무두장이 견습생으로 시작했지만 사소한 절도로 전향했다.

16세에 가죽을 훔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구금은 피했다. 그 후 그는 프랑스와 신성 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국경이던 라인 강 양쪽에서 침입과 무장 강도로 전향했다.

쉰더한네스 전설은 라인란트Rhineland 훈스뤼크Hunsrück 지역 시장 마을인 짐머른Simmern 감옥 탑prison tower에서 탈출한 그의 이야기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당시 라인 강 서안은 프랑스 점령 하에 있었고, 농민들은 법을 어기는 사람을 누구든 기쁘게 축하했다.

1798년 말, 뷔클러는 최소 40마리 소와 말을 훔친 전과가 있었다. 그는 프랑스 헌병대에 체포되어 판사 앞에 끌려나갔고, 판사 앞에서 범죄 일부를 자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뚫을 수 없다고 믿은 짐머른 목조 탑에 갇힌 그는 동정심 많은 경비원이 몰래 들여온 부엌칼로 작은 창문에 구멍을 내 탈출했다.

 

쉰더한네스

 

이 탈옥 사건은 널리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쉰더한네스는 민속 영웅이 되었다.

쉰더한네스 전설은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때마다 더욱 커졌다. 상황이 너무 위험해지자 쉰더한네스는 라인 강을 건너 도피하여 야콥 슈바이카르트akob Schweikart라는 가명으로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옛 동료가 그를 알아보았고, 그는 프랑스 당국에 넘겨져 중세 시대 마인츠 방어 성벽defensive wall of Mainz(소위 "홀츠투름Holzturm") 탑에 수감되었다.

그의 정부였던 율리아나 블라시우스Juliana Blasius가 공범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쉰더한네스는 동료 갱단원들을 고발했다. 그의 동료 19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협조에도 불구하고 쉰더한네스 역시 사형을 선고받았다.

1803년 11월 21일, 그는 마인츠 성문 앞에서 단두대에 올랐다.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그의 처형을 지켜봤다.

그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무법자로 남아 있다. 그의 전설은 오늘날에도 그의 갱단이 활동한 지역에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행적을 보면 순전히 악행으로 명성을 얻었지 의적에 속한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왜 민중은 열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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