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중국 안휘성문물고고연구소安徽省文物考古研究所가 공사가 예정된 안휘성 안경시安庆市 잠산시潜山市 매성진梅城镇 칠리촌七里村 호포조虎铺组 일대 작은 언덕을 발굴한 결과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와 양한兩漢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무덤 75기와 남송시대 가마터 네 곳을 확인했다.
무덤은 전국시대 초나라와 한나라 시대 것이 주종인 반면 소수 육조시대와 송나라 때 유산을 포함한다.
무덤 대부분은 목제 매장 시설과 인골이 대부분 부패했지만 일부에서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보였으며 개중에는 도굴되지 않은 초나라 무덤 3기에서는 썩지 않은 관곽과 청동기와 칠기 목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남송시대 가마는 특이하게도 모두 전한 시대 무덤 봉토를 뚫어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봉분이 가마를 만드는 호조건을 제공한 것이다.
1. 전국시대 초나라 무덤
무덤 75기 중 전국시대 초나라 무덤은 모두 37기였다.
조사 결과 모두 묘도墓道가 없는 수직 동굴식 흙 구덩이 무덤, 이른바 장항병 수혈 토갱묘长方形竖穴土坑墓로 드러났다.
일부 무덤에는 봉토가 남아 있었다.
관 구조는 대부분 관槨槨 하나씩을 썼지만 일부는 하나는 곽 하나에 관 두 개를 갖추었다.
덧널[槨]을 갖춘 무덤의 경우 대부분 옆칸[변상边厢]이나 머리칸[두상头厢]이 있다.
묘 방향은 주로 남북 방향이다. 당연히 머리는 북쪽으로 두었을 것이다.
널과 덧널리 잘 보존된 7개 무덤이 모두 이 유형에 속하며, 그 중 1개는 관과 곽이 각각 하나에 옆칸과 머리칸을 갖추었다.
개중 두 무덤은 덧널 하나에 이중 관에다가 옆칸이 있고, 네 곳에서는 관과 곽 각 하나에 옆칸을 갖추었다.
관이나 곽은 모두 나무 판자형이며 덮개는 평평하게 하되 별도로 잠금 장치를 하지는 않았다.
일부 덧널과 옆칸 사이에는 여닫이 문짝도 드러났다.
보존 상태가 좋은 데서는 껴묻거리를 비교적 풍부하게 옆칸에다 두었다. 초나라 무덤에서 흔히 보는 청동솥铜鼎, 청동 항아리[铜壶와 铜罐], 청동세숫대야铜洗, 나무인형木俑, 나무잔木耳杯이 수습됐다.
한 무덤에서는 관과 곽 사이에 옥원玉瑗 1개가 박혀 있었다.
이로 보아 초나라 후기 혹은 후기에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권력가 부호들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2. 양한两汉시대 무덤
모두 36좌座이며 구덩이를 수직으로 파고 들어간 수혈토갱묘竖穴土坑墓와 벽돌무덤砖室墓 두 종류로 나뉜다
토갱묘는 24기이며, 일부 무덤에는 높은 봉토 더미가 있다. 개중 10개 무덤에는 묘도墓道가 있다.
묘 방향은 주로 동서 방향이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가 주로 3~4미터다.
묘도는 직사각형으로 비탈형이 많다.
관은 모두 썩었고, 무덤 밑바닥에는 관 흔적이나 침목 홈이 보인다.
껴묻거리는 주로 매장 시설 북쪽이나 중앙 남쪽 지점에 배치된다.
기물 조합으로는 솥, 항아리[罐과 壶], 사발碗, 아궁이 등이 있다. 铜镜, 铜带钩, 铜剑, 玉剑珌, 玉剑璏, 그리고 铁削刀 등이 있다.
묘도가 없는 토갱묘 14기는 모두 남북향이며, 부장품은 종종 남단에 배치되고, 일부는 북단이나 동서 양측에 배치된다.
기물 조합으로는 鼎、壶、盒、罐그리고 钫 등이 있다.
벽돌묘 12기 중 3기는 묘도가 없다. 토갱묘에서 전실묘로 전환하는 단계 수혈 토갱 전곽묘竖穴土坑砖椁墓에 속한다.
모두 도굴당해 부장품은 없다.
7개 무덤은 묘도, 봉문벽, 복도 및 묘실로 구성된다.
묘도는 대부분 남향 또는 동남향이며, 일부는 북향 또는 동북향이다.
일부 무덤은 전후실로 나뉜다.
부장품 기물 조합으로는 罐、灶、壶、铜镜、铁剑 等이 있다.
또한 2개 벽돌 무덤은 여러 개 묘실로 구성되며 묘도, 봉문장封门墙, 복도甬道, 횡전실横前室 및 후실后室로 구성된다.
그중 1개 무덤은 두 개 후실이 수직으로 배치되어며, 1개 귀실이 있다.
다른 1개는 나란히 있는 이중 후실로, 두 후실 사이에는 창문 형태의 '과선교过仙桥'가 연결되어 있다.
3. 남송 가마터
4곳은 구조가 유사한 반도염식 만두 가마半倒焰式馒头窑다.
평면 형태는 긴 숟가락 모양이며 모두 전한 무덤 봉분을 뚫고 만들었다.
출토 유물로는 타일과 도자기, 기와 등이 있다.
가마터 안 벽돌에서는 “紹定壬辰”、“知府監簿趙希袞”、“□事郎章□□措置”、“從事郎趙興諫措置”、“縣尉從事趙……”、“承事郎章……”、“……章詵伯措置”、“西十里窑”和“廬子塘窑” 등의 글자가 드러난다.
이로 볼 때 이 가마 터는 남송 소정绍定 연간 안경지부安庆知府 조희곤赵希衮이 재임할 때 그의 조직 하에 안경부성安庆府城에 조달할 벽돌과 건축 자재를 전문적으로 구운 관요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발굴성과 중 난 이 남송 가마 운영 행태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만두가마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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