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언론을 향해 직필하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진실을 알고 싶다 아우성이다.
이조차 요새는 당파성이 아주 강해서 그 의미는 내가 보건대 심각히 변질해서
내가 보고 싶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는 강요 윽박에 다름 아니지만,
그런 당파성이 상대적으로 옅을 때도 그네가 말하는 진실 혹은 팩트는 있을 수 없다.
직필 혹은 철저한 팩트 기술이 가능할 거라 보는가?
전제 자체가 틀려먹은 형용모순인 까닭에 영원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내가 보고 싶은 그림만 있을 뿐이며 그 그림은 진실이 아니라 일루션이다.
물론 저 자체 의미를 내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저에 주린 시대가 있었으니 그런 시대는 아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은폐되는 일이 비일비지재했다.
심지어 그런 일이 초래한 원인은 물론이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자체가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 지금이라 해서 크게 달라졌느냐 하면 분명 달라지긴 했다.
적어도 내가 보고 너가 본 것이 감춰지는 시대는 아니니깐 말이다.
그러기엔 기자도 많아졌고 언론매체도 폭발했으니 지금이야 개인 하나하나가 언론사요 기자인 시대다.
그렇다 해서 저 은폐 엄폐가 없겠는가?
그런 사회일수록 그 공작은 더 고도화하기 마련이라 지금은 저 시대흐름을 이용하는 시대다.
객설이 길었다.
왜 진실을 우리는 대면할 수 없는가?
그 진실 아니 그 전 단계 팩트만 해도 실은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팩트는 실은 고약하기 짝이 없다.
인류 탄생 이래 그 어떤 인간도 진실해 본 적이 없다.
그 진실의 바닥은 언제나 민낯이기 때문이다.
사드나 마광수나 오스카 와일드가 왜 쫓겨났는가?
내 보기엔 진실이었거나 그에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바닥을 저들은 가감없이 까발렸다.
그 까발린 바닥은 그렇게 불편했다.
진실은 그래서 감추고 짓눌러야 한다.
언제까지?
질식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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