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고훈たからづかこふん 이라 읽는 보총고분宝塚古墳은 일본국 삼중현三重県 중부 송판시松阪市 시가지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보총정宝塚町·광종光町에 소재하는 고대 일본 무덤 2기를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으로, 그 각각은 보총1호분宝塚1号墳과 보총2호분宝塚2号墳이라 일컫는다.
판내천阪内川 오른쪽 연안 구릉지대(남북 1㎞, 동서 1.25㎞)에 들어선 이 무덤 중 특히 1호분을 중심으로 적어도 88기에 이르는 비슷한 시대 무덤이 확인되어 이들을 합쳐서 보총고분군宝塚古墳群이라 한다.
다만 저 두 무덤 말고 4호분 정도가 남았을 뿐 나머지는 전후 혹은 전전 개발 과정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보총宝塚 이라는 이름은 소화昭和 초기 무덤 분포조사를 한 령목민웅鈴木敏雄이 현지 사람들한테 그렇게 일컫는다는 사실을 채록하면서 시작한다.
1998-2003년도에 송판시교육위원회松阪市教育委員会가 발굴조사를 벌였다.
두 무덤은 각각 당시 이세伊勢지방을 대표하는 대형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과 범립패형고분帆立貝形古墳으로 고분시대古墳時代 중기에 해당하는 5세기 초두·5세기 전반기(일본 고고학에서는 전반기보다 빠를 경우를 흔히 초두라는 말을 쓴다) 축조로 추정되며 서로 전후하는 수장묘首長墓로 생각된다.
1호분에서는 통형식륜円筒埴輪이 다량으로 선 상태로 확인된 것 말고도 출도상시설出島状施設[쓰쿠리다시造出 일종]의 전면적 발굴조사가 이뤄져 다양한 식륜 제작도 확인되었으며, 그것을 만들 때는 야마토왕군이 일정 부분 후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일대가 야마토왕군 외항外港으로 간주되는 인근 지역 고대 항구 적사的潟[마토카타, まとかた]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며, 이와 비슷한 양상이 삼하만三河湾 연안沿岸에 위치하는 정법사고분正法寺古墳[愛知県 西尾市]에서도 보인다는 점에서 이들 지역 해상교통 거점으로서 왕권이 중요시한 모습을 시사한다.
즉, 분구 길이 90m 전방후원분인 정법사고분 역시 이와 흡사한 5세기 전반 축조로 생각되며 3단 분구 축성이고 단소短小한 전방부前方部에다가 즙석葺石을 하고 통형식륜과 형상식륜形象埴輪을 본격 채용했으며, 아울러 조상유적島状遺構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두 지역 무덤은 흡사함이 많다.
발굴조사와 정비가 끝난 현재는 보총고분공원宝塚古墳公園이라는 사적공원으로 공개된다.
簡史
소화昭和 초기, 鈴木敏雄에 의한 古墳 分布調査. 1号墳을 포함하는 古墳 총계 88基 보고(『飯南郡花岡村考古誌考』)[1][3]
1932년(昭和7年) 4月25日, 1号墳·2号墳 古墳域이 国の史跡 指定[6][3]
1970-1971年(昭和 45-46年), 1号墳·2号墳 測量調査(三重大学歴史研究会原始古代史部会)
1978年(昭和53年) 9月18日, 史跡範囲の追加指定(2号墳이 円墳이 아니라 帆立貝形古墳으로 판명나서 전방부前方部 指定地 外部를 追加指定)[6]
1998-2000年度(平成10-12年度), 1号墳 発掘調査(松阪市教育委員会)[8][3]
2001-2003年度(平成13-15年度), 2号墳 発掘調査(松阪市教育委員会)[3]。
2005年(平成17年) 4月 27日, 宝塚古墳公園 開園[9]
2006年(平成18年) 6月9日, 1号墳 出土品이 国の重要文化財로 指定[7]
보총1호분宝塚1号墳
5세기 초두에 등장한 것으로 본다. 이세伊勢 지방 최대급 무덤이라, 전장全長 111m로, 전방부前方部 최대 너비 66m(높이는 쓰쿠리다시 기준으로 8.1m)에 후원부後円部 지름 75m에 최대 높이 10m(쓰쿠리다시 기준)인 전방후원분이다.
당시 이 지역을 호령한 반고씨飯高氏 시조라 해서 황태신궁의장皇太神宮儀式帳을 비롯한 문헌에 보이는 을가두지명乙加豆知命 무덤이라는 전승이 있다.
전방부前方部가 동쪽을 향한다. 분구는 3단을 지어 만들었다.
무덤 북쪽에는 제사 지낸 공간으로 생각되는 쓰쿠리다시造り出し라 일컫는 너비 약 18m, 길이 약 16m인 돌출부 마당이 있고, 봉분과는 토교土橋로 연결된 상태다.
이와 유사한 쓰쿠리다시는 소산고분巣山古墳[奈良県 北葛城郡 広陵町]이 알려졌다.
이는 쓰쿠리다시라는 공간이 정형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극히 중요한 실례로 꼽힌다.
나아가 누가 봐도 두 무덤이 밀접한데, 쓰쿠리다시가 1호분에서만 확인된다는 사실은 이 1호분에서 쓰쿠리다시가 행하는 의식을 2호분까지 같이 했다는 증거다.
이 쓰쿠리다시 주변으로부터 140점에 달하는 식륜埴輪이 매장 당시 상태를 잘 보여주는 모습으로 발견되어 이 또한 그 배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시한다.
1호분 매장주체부는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레이저 탐사 결과 후원부後円部墳 정상 아래 1.2m 지점에서 남북 방향을 장축으로 삼는 길이 약 7m 점토곽粘土槨 흔적이 보고됐다.
전방부 구릉에서는 가형식륜家形埴輪이 출토하나 이 지점에 매장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지적된다. 비슷한 사례로 島の山古墳(奈良県磯城郡川西町)이 있다.
出島状施設 남서쪽 경사지에서는 순형식륜盾形埴輪을 이용한 식륜관埴輪棺으로 보이는 흔적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식륜관은 즙석葺石을 파괴하고서 설치된 것이다.
보총2호분宝塚2号墳
이 역시 비슷한 5세기 전반 등장으로 본다. 전방부前方部가 짧은 범립패식帆立貝式[호타테카이시키ほたてがいしき]라 일컫는 전방후원분이다.
발굴조사 결과 전방부는 도로공사로 날아갔지마는 도로 반대편에서 전방부 귀퉁이가 발견됐다.
봉분 정상에서는 장사를 지낸 뒤 그 의식을 행한 장소로 생각되는 작은돌들을 깐 구획이 발견됐다.
1호분에서 발견된 호형壷形[쓰보가타つぼがた] 식륜埴輪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호형식륜壷形埴輪과 통형円筒[엔토우えんとう]식륜이 일체화한 조안형식륜朝顔形埴輪이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2호분은 1호분에 매장된 사람의 후계자가 묻힌 곳으로 생각된다.
평성平成 11년, 1999년 착수한 발굴조사에서는 1호분 쓰쿠리다시에서 다른 데서는 유례가 없는 선형식륜船形埴輪이 발견되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식륜은 全長 140cm로 제일로 컸고 선상船上에 입체성 있는 장식물을 세운 형태로서는 유일했다.
이 배는 고분에 매장된 인물 생전 업적을 보여주는 것 말고도 영혼을 다른 세상으로 운반하는 장송품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기타 통형円筒·호壷·개蓋·순盾·위囲·주상柱状·단갑短甲[탄코우たんこう]·가家 등 각양각색 모습을 띤 식륜이 출토됐다.
1호분 출토품 일괄은 평성 18년, 2006년 국중요문화재国重要文化財로 지정되었다.
식륜 일부는 송판시문화재센터松阪市文化財センター에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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