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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羌族의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된 吹管 악기의 일종으로 강관(羌管)이라고도 한다. 그 역사는 유구해 漢代 이래 역사문헌에서 그에 관한 기록이 적지 않다. 《풍속통(風俗通)》에 이르기를 “漢武帝時에 丘仲이 笛을 作하니 그 후에 또 강적(羌笛)이 있었다”고 했다. 陳暘의 《樂書》에는 또 이르기를 “羌笛은 구멍이 다섯이다. 馬融이 賦笛에서 이르기를 羌中에서 왔으며 舊制에는 구멍이 4개였을 뿐이다. 京房에서는 구멍 하나를 더하니 그리하여 五音을 갖춘다”고 했다. 隋․唐에서 宋․元․明 各代에 이르기까지 강적은 文人의 詩文에서 자주 보인다. 王之渙의 《涼州詞》에 이르기를 “羌笛何須怨楊柳, 春風不度玉門關”라고 했으며. 範仲淹은 《漁家傲》에서 읊기를 “羌管悠悠霜滿地, 人不寐, 將軍白發征夫淚”라고 했다. 羌笛은 油竹으로 制成하니, 雙管은 並連在一起하며, 장식에는 竹簧口哨이 있으며, 豎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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