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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고보가 고등학교로 둔갑한 이유

by 신동훈 識 202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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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천고보 금강산 수학여행

 

일제시대에 살던 조선인들이나 일본인들 모두,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것, 

고보는 중학교와 같은 급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있겠는가? 

고보를 나오면 상급학교라면 결국 고등학교 아니면 전문학교, 대학예과 등인데 

고등학교와 대학예과는 언감생심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주 예외적으로 여석이 있거나 정말 뛰어난 조선인은 그 벽을 뚫고 들어가는 천재들이 있기는 했지만, 

고보 졸업생이 상급학교라고 하면 높은 확률로

전문학교,

낮은 확률로 고등학교, 대학예과 등이었기 때문에 

고보가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제말 (1937년), 제3차 조선교육령 때

고보는 일괄해서 모두 중학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고보는 왜 고등학교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고보가 고등학교와 혼동되기 시작한 건 해방 이후부터다. 

해방이후 일제의 조선교육령이 만들어 놓은 교육제도가 사라지고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고보를 5년제에서 6년제로 만들고 

이를 다시 3년과 3년짜리 과정으로 나누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구제 고등보통학교는

해방 이후 6년제가 되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고등보통학교는 고등학교다, 라는 인식이 보편화 했다. 

하지만-. 

일제시대의 고등보통학교 졸업생은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고

해방이후 고등학생은 대학입학을 원하면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두 개의 학교는 전혀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니다. 

특히 조선에서 해방 때까지 일제는 경성제대 이외에는 

구제고등학교의 설립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조치로, 

이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조선인의 대학 입학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정책이었다. 

알다시피 한국인의 대학입학은 해방 이후 

6-3-3-4 학제로 바뀌면서 폭증하여 

1960년대가 되면 이미 고등학생이 궐기하여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 [편집자주] ***


무엇보다 이름 때문이다.

고보라는 명칭이 마치 고등학교처럼 인식된 것이다.

나아가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 식민지 시대 고보는 해방이 되면서 모조리 중고교로 분리되었다.

이 분리 상태서 식민지시대 고보생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

모조리 고교로 가버렸다.

내 모교 김천고등학교도 모태가 당연히 식민지시대 김천고보다.

이 선배님들이 해방 이후 동창회서 어디로 가겠는가?

물론 김천중학교는 베이스로 깔고 모두 김천고등학교 동창회로 편입했다.

이를 따지는 이유는 식민지 시절엔 중학교라 해서 쳐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할 따름이다.

더불어 고보는 오년제라 이 역시 애매하다.

해방 이후 중학교보다 폭이 넓어 일부 고교 과정을 포함한다.

아 참 또 한 가지, 식민지시대 고보를 졸업하고 간 연희전문과 보성전문과 같은 당시 전문학교들이 해방 이후 모조리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일로 꼽아야 한다. 저들 전문학교 식민지시대 졸업자들이 해방 이후 어디로 갔겠는가? 다 연세대 고려대 동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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