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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국립박물관, 문화재청과 통합했어야 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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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야경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꾸린 그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08년 1월 16일 새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그 개요를 보면 정보통신부는 해체해서 그 기능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문화부의 4개 부처로 이관하며, 산업자원부는 IT와 원자력 정책을 통합, 지식경제부로 확대개편하고, 농림부는 해양수산부의 어업수산 정책과 보건복지부의 식품산업진흥 정책을 넘겨받아 농수산식품부로 개편한다는 것이었다.

해양수산부는 해체하고 ▲해양정책·항만·물류 ▲수산 ▲환경의 3개 기능으로 쪼개 각각 관련 부처로 흡수하고, 건설교통부는 기존 업무에다가 해운물류를 흡수하고 산림청까지 산하기관으로 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화 관련 조직 또한 개편 대상이었으니, 애초 계획대로는 문화관광부가 국정홍보처와 정보통신부 일부 기능을 넘겨받아 ‘문화부’로 명칭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이에는 문화부 소속기관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은 관장 직급을 1급으로 낮추고 문화재청으로 통합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역대 어느 정권의 출범 초기 조직 개편은 그에 따른 격렬한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계획은 계획으로만 끝나고 끝내 실행되지 못한 것도 있으니, 개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립박물관의 문화재청으로의 통폐합이 그러했다. 이는 결국 없던 일로 되고 말았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 하등 변함이 없어 국립중앙박물관은 여전히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 신세를 면치 못한다.

나는 이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로 봤다. 그 기회를 날린 것이다. 누가 날렸는가? 박물관 스스로가 허공에다가 날리고 말았다.

국립박물관은 문화재청으로 갔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지 않은, 혹은 그것을 거부한 까닭은 간단히 말해 꼴난 자존심 때문이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얕잡아보던 문화재청에 우리가 밑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그 꼴난 자존심이 가장 컸다.

물론 그것이 박물관 발전의 획기였을 것이라는 내 주장을 못내 따르지 못하는 이가 많을 줄로 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써 박물관은 박물관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절호의 기회를 적어도 반세기 이상 늦추고 말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작금과 같은 문체부 소속기관으로는 언제나 문체부의 그저그만한 하부 기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큰집에 기대어 빌붙어 사는 흥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 내부에서도 문화재청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반향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찬성론자에는 뜻밖에도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이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이영훈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런 소수를 제외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박물관의 발전이 아니라, 현실 안주였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문화재청에 굽신거릴 수는 없다는 꼴난 자존심이었다.

그런 역사적 책임에서 박물관 출신자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통합 방침이 발표되자, 역대 박물관장이라는 자들이 연대 서명하여 반대 성명을 냈다. 정양모를 필두로 지건길, 이건무 등등이 그 반대에 서명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나아가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을 비롯한 노땅들한테 SOS를 쳤다. 이어령이 박물관 구출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명박을 독대한 자리에서도 그 부당성을 설파했다고 한다.

그런 이들은 결국은 그 계획을 무산시켰으니, 지금은 내가 그에 일조했다고 자랑스러워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박물관 발전사에서는 죄인들이다. 나는 그리 본다. 

그에 더해 문화부에서도 노골적인 반대 움직임을 펼쳤으니, 당시 문화부 장관 김종민이 이 반대 움직임을 주도했다. 문화부가 반대한 이유는 작은집의 지나친 비대화였다. 자칫하다간 작은집에 큰집이 먹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다.

당시 국립박물관은 지방박물관까지 다 합친 예산 규모라 해봐야 내 기억에 1천억원 내지 1천5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예산과 거의 같은 규모였다. 하기야 대국민 서비스 기관이니 예산이 많을 필요는 없다.

예서 문제는 그 인력이었다. 박물관은 인력 규모가 당시 550명 안팎이었다고 기억하며 문화재청은 800명 규모였다고 기억한다. 이들이 통째로 문화재청으로 가면, 전체 문화재청 직원 규모는 문화부의 그것과 거의 맞먹는 수준에 이른다. 이것을 큰집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공작은 집요해 결국은 국립박물관을 문화부 산하로 그대로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국립박물관 꼬라지는 어떤가? 그대로다.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그때 만약 문화재청으로 갔더라면?

나는 왕청나게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지금과는 수준이 달라졌을 것이라 본다. 

왜인가?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박물관은 언제나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문화재청에서의 그것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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