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60)
그윽한 난초꽃(幽蘭花) 둘째
宋 소철(蘇轍) / 김영문 選譯評
그윽한 난초 진중하게
꽃 한 줄기 피우니
맑은 향기 미세하게
있는 듯 또 없는 듯
향기의 높낮이를
비교해 보려고
온갖 꽃들 만발할 때
함께 꽃을 피우는 게지
珍重幽蘭開一枝, 淸香耿耿聽猶疑. 定應欲較香高下, 故取群芳競發時.
이 시의 작자 소철은 부친 소순(蘇洵), 형 소식(蘇軾)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하는 대문장가다. 이 삼부자는 시(詩), 서(書), 사(詞), 문(文)으로 북송 문화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소철은 형 소식의 명성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그의 섬세한 시와 고아한 문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난초는 사군자 중에서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지만 이 시는 아마 봄에 지은 듯하다. 향기로운 꽃들(群芳)이 다퉈 핀다(競發)는 표현이 그것을 증명한다. 진하게 코를 자극하는 봄꽃 향기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윽하게 다가오는 난초 향기가 더 품격이 높다는 걸 은근하게 묘사했다. 난초를 키워보면 물, 바람, 햇볕 등 생장에 필요한 요소를 관리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윽한 향기를 맡고 싶다 해도 매년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나도 이사온 후 난초 한 분(盆)을 선물 받아 키우다가 관리를 잘못하여 거의 잎이 말라죽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온갖 인터넷을 검색하여 난초 관리법을 익히고 나서야 겨우 새 잎을 돋게 했고, 올해는 꽃대가 세 가지나 올라오는 경사를 맞이했다. 하긴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간 난초가 생존본능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므로 은근히 미안한 마음도 든다. 맨 먼저 꽃을 피운 꽃대 하나는 벌써 까맣게 시들었다. 코를 대고 맡을 때는 거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다가 서재에 앉아 있을 때 문득문득 전해오는 난초 향기는 그야말로 사람을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다. 이제 곧 두 꽃대도 꽃을 피울 터이므로 며칠 동안 그윽한 향기에 젖을 생각에 은근히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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