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61)***
「유란」 곡을 듣다(聽幽蘭)
唐 백거이 / 김영문 船譯評
금곡(琴曲) 중 옛 곡조가
「유란」 곡인데
나를 위해 은근하게
또 연주하네
심신 모두 고요함에
젖어들려고
나 자신 솜씨 모자라
남 연주 듣네
琴中古曲是幽蘭, 爲我慇勤更弄看. 欲得身心俱靜好, 自彈不及聽人彈.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대로 직역하면 “그윽한 난초를 듣다(聽幽蘭)”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향기 맡는 걸 “문향(聞香: 향기를 듣다)”이라 하기에 이 시 제목도 언뜻 “그윽한 난초 향기를 맡다”로 이해된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면 「유란(幽蘭)」이 금(琴) 연주곡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란」은 일명 「의란(猗蘭)」으로도 불리는 아주 오래된 ‘금곡(琴曲)’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다가 깊은 계곡에 핀 난초꽃을 보고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빗대 「유란」을 작곡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각종 『금보(琴譜)』에 「유란」이란 곡명이 실려 있고, 청말(淸末) 학자 양수경(楊守敬)도 일본 교토 서쪽 카모현(賀茂縣) 진코인(神光院)에서 당나라 사람이 필사했다는 「갈석조(碣石調)---유란(幽蘭)」이란 문자 악보를 발견했다. 이것이 공자가 작곡한 금곡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시의 작자 백거이가 활동한 당나라 때 「유란」이란 금곡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자는 인간 교화를 위한 음악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금(琴)을 즐겨 연주한 금(琴) 마니아였다. 유학자로서 공자의 전통을 계승한 백거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거이는 바람이 금(琴)을 스치는 소리(風弦)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자신보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의 금(琴) 연주에 심취하기도 했다. 백거이는 자기 금(琴) 연주 수준의 한계를 알았고 그보다 높은 경지는 뛰어난 전문가의 연주를 감상했다. 연주자와 감상자의 영역이 다름을 인정한 셈이다. 뛰어난 감상자 백거이는 어쩌면 금(琴) 연주를 들으며 그윽한 난초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난초꽃 향기를 맡으며 금(琴)이나 거문고 소리를 듣는 경지 말이다. 이 시의 제목이 그런 경지를 암시한다.(사진출처: 宋聘号 홈페이지)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리 같이 선 왜가리 (0) | 2018.09.03 |
---|---|
꽃향기 모르는 잠자리 (0) | 2018.09.03 |
그윽한 난초가 꽃을 피우고 (0) | 2018.09.03 |
대문 닫고 하는 마음 수양 (0) | 2018.09.03 |
바람에 소리내는 현악기 (0) | 2018.09.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