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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그 신문이 그 신문?

by taeshik.kim 2018.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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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뤠기'로 격하된 지금이나, '기자'로 입성한 25년 전이나, 매양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신문이 왜 이리 많으냐, 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 맨 같은 뉴스 뿐이라 종이 낭비라는 볼멘소리다. 


그런가?


이젠 더는 비밀이 아니며, 더구나 언론계 내부까지 속속들이 드러나는 마당에 이참에 그 한쪽 끄터머리에 숨어 있는 한 사람으로 한 마디 꼭 보탠다면 같은 신문은 지구상 인류가 출현한 이래 단 한번도 없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말하는 같은 신문이란 같은 사안을 다룬다는 뜻일 뿐, 같은 뉴스는 없다. 같은 사안이라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 눈만큼 다양하다. 10개 신문이 있다면, 10개 뉴스가 있을 뿐이다. 

이명박이 독직 스캔들로 검찰에 어제 출두한 오늘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으로 머릿기사를 삼았다. 보니 한겨레가 제목이 가장 강렬하다.

하지만 언론의 본분이라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적지 않은 미다시다. 뭐 시궁창에 쳐박힌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까지 동원하지 않는다 해도, 저런 미다시는 MB는 모조리 자기 혐의를 인정했어야 하며, 그런 까닭에 그것을 모조리 부정한 너는 쳐죽일 놈이라는 전제를 깐 셈이다. 

내가 생각하는 언론의 본령 중 하나는 비판 의식과 문제제기의 기능이다. MB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시선이 싸늘하기만 한 지금, 저런 제목을 단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또 그것이 많은 독자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줄 지도 모르지만, 자칫 저 말은 과거의 권력에 대한 현재의 권력에 대한 무비판으로 귀착할 수도 있다. 저 사건 수사에 현재 권력의 힘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지 모르나, 저리 몰아붙이는 검찰에도 혹 무리가 없는가 하는 점도 적어도 내가 아는 언론이라면 고려를 해야 한다. 

내가 MB를 쳐죽일 놈이라 생각한다 해서, 또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가 그리 생각한다 해서 지금 검찰이 언론을 통해 직간접으로 흘린 혐의가 모두 사실로 확정되거나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 날개죽지 끊긴 과거의 권력보다는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하는 현재의 권력을 항상 언론이 견제해야 한다고 본다. 부디 이 말이 MB에 대한 옹호로 해석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가 나쁜 것과 실제 어떤 점이 어떻게 나쁜가는 전연 별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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