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하는 설민석>
말이 많은 친구는 설화를 피해갈 수 없다. 더구나 언제나 대중에 노출되는 저명 강사야 오죽하겠는가?
나는 지명도에서 저와 비교가 될 수 없지만 혹여 내가 저 정도로 유명해진다면 저보다 더한 일 겪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말을 뇌까려 놓았다.
각설하고 나는 설민석을 새로운 시대의 인문학 열풍을 일으킨 현상으로써 줄곧 주시했다. 학원강사의 강의를 인문학 영역에 포함해야 하느냐는 논란은 논외로 친다. 그는 분명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강연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그것을 축제로 만들 줄 알았다. 나는 지나가며 몇번 그의 강연을 봤지만 내용과 더불어 그의 액션을 봤다.
내용..이건 처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점에선 난 늘 사석에서 저 친구는 이제 침잠할 때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는 역사지식을 전파할뿐 사관이 없다.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 저 장사를 이젠 내면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요구다. 그는 연예인이다. 때려치고 침잠할 여유가 없다. 그러고 보면 저 친구는 저리 살아야 한다.
그는 모르긴 해도 거부일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금이 물처럼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설민석은 기업이다. 어느 중소기업보다 더 알찬 기업이다. 이런 그에게 폐업을 요구할 수는 없다. 강연으로 돈 벌어먹는 표본을 설민석은 만들었다. 저 친구는 종래의 구라쟁이 이어령이나 유홍준과는 또 다르다.
이어령은 책임지지도 않고, 책임질 필요도 없는 추상만을 나열했다. 유홍준은 책임져야 하지만, 무책임성 발언에 너무 많은 뻥을 쳤다. 그에 견주어 설민석은 오로지 강연과 그에 따르는 저술만으로도 모든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의 강연에 학부모 엄마들이 열광하고, 그에 강연에 수험생들이 귀를 쫑긋이 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점이 그 강연의 질이다. 이 질은 처참하기 짝이 없어 그만하련다.(March 19, 2017 페이스북 포스팅인데 지금도 유효하다 생각해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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