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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까마득히 잊고 지낸 청와대 불상의 추억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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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다. 나 자신도 잊어버린 내 자식을 다른 이가 찾아주었다. 


어제 우리 공장 연합뉴스 문화부에서는 이른바 '미남불상(美男佛像)'이라 일컫는 청와대 경내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원래 어디 있다가 이동했는지를 두고, 그것이 본래 경주 이거사지(移車寺址)라는 절터임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대정大正 6년(1916) 문건 《신라사적고新羅寺蹟考》를 발굴 공개함으로써, 이 불상 출처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기사를 내보냈다.




한데 이 《사적고》는 출처가 신라학 혹은 경주학도로 이름 높았던 故 이근직 경주대 교수 컬렉션이다. 그의 유족이 최근 고인이 생전에 수집한 경주신라학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문제의 저 자료를 발견하고는 나한테 긴급히 연락한 것이다. 


저 청와대 불상이 여전히 청와대 구중심처에 볼모로 잡혀있음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그것이 경주로 반드시 귀환해야 한다는 신념이 깊었던 근직 형은 생전에 나한테도 그것이 본래 봉안된 곳이 이거사지였음을 줄기차게 주장했거니와, 경주지역 절친 박영우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8년에 내가 작성한 관련 기사를 찾아내고는 해당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링크를 한 것이니, 아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나조차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산 내 기사다. 


<청와대 불상 출처는 경주 이거사>

기사입력 2008-05-12 07:02 최종수정 2008-05-12 09:52


청와대 안 통일신라 불상

"경주 남산도, 유덕사도 잘못"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청와대 경내 유일한 고대불상이 지난 9일 공개됐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쪽 보호각 안에 안치된 높이 1m의 이 석조여래좌상은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4호로 등재돼 있으며 그 양식으로 보아 8세기 무렵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평가된다. 석굴암 본존불과 크기만 다를 뿐 양식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근거다. 

이 불상은 어디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일까? 

출처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경주 남산일 것이라는 추정과 경주시 도지동 유덕사(有德寺)라는 주장이 그 것이다. 

유덕사라는 주장은 신문기자 출신 미술평론가이자 문화재 사가(史家)인 이구열 씨의 1973년 저서인 '한국문화재비화'와 그 재판인 '한국문화재 수난사'(돌베개.1996)에서 나온다. 

남산이라는 추정은 경주라는 원래 자리를 떠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대체로 남산에서 나온 것인데서 기인한다. 실제로 남산은 지금도 거대한 신라시대 야외 불교 박물관을 방불케하고 있다. 

그 출처가 어디건 청와대 불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에 안치되게 되었는지는 이구열 씨가 자세히 정리했다. 

이씨에 의하면 이 불상은 1913년 무렵, 데라우치 조선총독이 경주를 순시하던 중에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로 있던 오히라(小平)라는 일본인 집 정원에서 발견돼 고난의 여정을 시작한다. 오히라는 데라우치가 이 불상을 탐낸다고 생각해 즉시 지금의 남산 밑 왜성대에 있던 총독관저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후 이 불상은 "1927년에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지금의 청와대)가 신축되자 그리로 옮겨져갔고, 현재도 청와대 숲속 침류각(枕流閣) 뒤의 샘터 위에 잘 안치돼 있다"고 이구열씨는 적었다.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74년 1월이며 현재의 보호각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청와대 안 불상의 어제와 오늘


한데 이구열 씨가 무엇을 근거로 이 불상의 출처를 유덕사로 지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른 무엇보다 유덕사의 위치 자체를 지금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찰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에 '유덕사(有德寺)'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이야기에 보인다. 

이에 의하면 "신라의 대부(大夫)이자 각간(角干)인 최유덕(崔有德)이 자기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고 그 이름을 유덕사(有德寺)라 했다. 그의 먼 후손인 삼한공신(三韓功臣) 최언위가 유덕(有德)의 진영(眞影)을 여기에 걸어 모시고 또 비도 세웠다고 한다"고 했다. 

이 것 외에는 어디에서도 유덕사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며, 더구나 그 위치는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불상이 유래한 곳은 어디일까? 

경주 지역사에 정통한 이 지역 출신 신라사 연구자 이근직 박사(문화재청 전문위원)는 "남산은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며, 유덕사 또한 무엇을 근거로 나온 주장인지 모르겠다"면서 "식민지 시대 이 불상과 관련되는 자료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것이 원래 있던 자리는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移車寺) 터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거사는 성덕왕릉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사찰의 존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시대 기록에도 보인다. 이에 의하면 성덕왕이 재위 35년(736)만에 죽자 "시호를 성덕(聖德)이라 하고 이거사(移車寺) 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 출처가 이처럼 비교적 확실하게 밝혀짐에 따라 경주지역 문화계 일각에서는 원래 자리로 불상을 모셔와야 한다는 여론이 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고딕체 부분에서 바로 나는 이근직 형 말을 인용했거니와, 그는 각종 자료를 검토한 결과 청와대 불상 본래 자리는 이거사임에 틀림없다 확신한 것이니, 그러고 보니, 당시 이와 관련한 전화 문의에 그는 분명히 그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있다고 자신한 기억이 이제야 떠오른다. 그때 다음에 경주에 가면 그 자료를 보기로 했던 것인데, 그도 나도 만나면 이런저런 경주와 신라 문화 이야기로 날이 새는 줄을 몰라 그만 청와대 불상과 관련한 자료를 보는 일을 깜빡하고 말았으니, 그러다가 10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다가 그 사이 형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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