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젊은 분들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높게 평가바든 메디컬 드라마로 ER 이라는 미드가 있었다.
주라기 공원의 마이클 클라이튼이 각본에 감독이었고,
시즌 15인가까지 갔는데 방영되는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다.
무엇보다 응급실 이야기를 너무 리얼하게 담아서
보고 나면 응급실 근무한 것 같아 피곤하다는 농담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여기 보면 주인공 중에 Dr. Mark Greene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대학병원 응급실 attending으로서 (우리로 치면 교수)
자기 일을 정말 사랑하는 의사다.
그런데 이 양반이 어떻게 되냐 하면,
어느날 뇌종양진단을 덜컥 받는다.
졸지에 시한부 인생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이 사람은 뭐를 했겠는가?
이 사람은 응급실로 다시 들어가 환자를 봤다.
허탈해 하면서 응급실로 다시 돌아간다.
이 장면 처리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 리얼리티에 극찬했다.
환자를 생각하는 참된 의사의 정신 뭐 어쩌고 하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고,
드라마에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은 갈 데가 없어서 응급실로 다시 들어갔고,
다른것 마땅히 할 게 없어서 환자를 계속 본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 가지 일만 죽도록 성실히 하던 사람들 중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
큰일을 당하고도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처럼.
연구하는 사람들은 떠날 때가 되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유령처럼 배회한다.
누구나 평생도록 계속 자기가 하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연구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끝이 온다.
그리고 그 끝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Dr. Greene이 뇌종양 진단 받듯이 어느날 갑자기 덜컥 오고,
마치 지금까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갑자기 빼앗긴 아이처럼
더 이상 하던 연구를 할 수 없는 순간이 와서 망연히 서 있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말이다.
Dr. Greene이 뇌종양진단을 받고도 ER로 돌아가 환자를 다시 봤던 것은
헌신적의사의 행동이라고 제 삼자는 미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 만큼은 그는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연구.
언젠가는 끝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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