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전에 임진왜란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각본으로 삼는 절대 근거가 류성룡의 징비록과 이순신의 난중일기 두 가지라 했거니와, 이에서 비롯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들 두 저술이 철저히 당파성에 뿌리를 박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를 토대로 하는 드라마 영화는 철저히 류성룡과 이순신을 절대 善으로 그리며, 정치상에서 이들과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악인의 화신처럼 그리기 마련이다.
다산 정약용.
이 문제에서도 이와 똑같은 문제가 빈발한다.
다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모든 드라마나 책, 심지어 학술서적이라는 것도 볼짝시면 열에 아홉이 철저히 다산 중심주의로 일관한다.
이런 글을 보면 정조에게는 마치 믿을 만한 신하라고는 정약용 뿐인 듯하며 나머지 우수마발은 개xx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라, 정조가 아낀 신하 중에 다산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one of them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실제 정조 당시 정세를 봐도 다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다산이 남긴 글을 보면, 특히나 그의 생애를 구성하는 절대근거가 되는 것이 두 종류가 남은 자찬묘지명이라는 것인데, 이 중에서도 실제 묘에다가 적어 넣은 그 자신이 직접 쓴 자신의 묘지명은 간단하기 짝이 없는 반면에 문집에 수록할 요량으로 분량에 제한 없이 적어내려간 이른바 집중본集中本 자찬묘지명을 읽어가다 보면 기가 찬다.
나는 다산이 그르다 옳다, 선인이다 악인이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그의 자찬묘지명 역시 징비록이나 난중일기처럼 철저히 당파성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가 속한 남인의 반대편에 대해서는 지구상에서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비방을 일삼는다는 사실이다.
다산이 '억울하게' 유배를 갔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더구나 그런 고난의 18년 유배생활 동안에 초인적 저술을 남겼다 해서, 그런 다산에게서 압박받는 지식인의 표상을 발견하고는 그에다가 주로 자신의 심정 혹은 사정을 빗대어 일체화한 수많은 글이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만들어낸 다산에 자신을 감정 이입하다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다산을 보면 전연 다른 다산이 드러난다.
다산은 철저히 당파적이었다.
이 점을 망각하면 x된다. (2015. 7. 23)
***
철두철미한 남인 당파인 다산은 자파는 덮어놓고 정의로 포장해 옹호하고 다른 파는 덮어놓고 창자까지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만치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흘기는 요즘의 각당 나팔수나 극렬 지지자와 하등 다름없는 정치인이다.
이 당파주의로 환원하는 일이 그의 진면목에 다가서게 한다.
다산 신화화에 한문학 쪽 움직임이 심상찮다. 아다시피, 또 보다시피 역사학 쪽이 이 시대 서술에서 고담준론으로 빠져들어 망쪼가 드는 바람에 그 망쪼가 들어 구린내 펄펄 풍기는 학단을 한문학이 무혈입성해 접수하고는 독패시대를 구가한다.
이들은 18세기 르네상스론을 내세우며 그 정점에다 다산을 놓는다.
다만, 18세기라 하지만 이는 편의상이요 다산만 해도 주요 저작은 19세기 들어와서야 쏟아낸다. 내 보기엔 그조차 순수 자기 저작은 한 줌밖에 되지 않고 대필이 많다만.
나는 이 한문학 쪽 움직임을 실은 대단한 곡예타기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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