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열풍에 그 회차에서 다룬 소재 중 하나로 팽나무가 등장하면서, 주로 문화재로 밥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국한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새삼 당산나무 열풍이 일고, 그에 따라 느티나무와 더불어 그 당산나무 주종을 이루는 팽나무에 대한 관심 또한 증대하는 시국이라
앞에 첨부하는 사진 석 장은 그에 감발해 경남 거창 학예연구사인 구본용 선생이 소개한 그곳 남상면사무소 앞 팽나무와 그 그늘 아래 고인돌이라, 비단 저뿐만 아니라 당산나무는 꼭 고인돌이 아니라 해도 그와 비스무리한 넙떼데 돌덩이들과 세트를 이루는 일이 매우 많다.
당산나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동네 아이콘인 나무를 말한다. 이런 나무는 보통 동네 어구에 있거나 혹은 저 우영우에 등장하는 창원 팽나무처럼 동네 전체를 조망하는 높은 둔덕에 자리하는 일이 많거니와, 이곳은 특히 여름철이면 동네 사람들이 목침 놓고 더위를 피하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그런 까닭에 대개 간단한 정자 시설을 구비하는 일이 아주 많다.
꼭 당산나무라 하기는 힘들지만, 동네마다 그런 당산나무가 없는 곳에도 그에 비견하는 큰 고목이 있기 마련이라, 내 고향에서는 천연기념물 300호로 지정된 김천 대덕면 섬계서원 은행나무가 그런 곳이다.
아마 예외는 없지는 않을 듯한데 당산나무에 은행나무가 차지하는 일은 없다. 왜? 꼬랑내 때문이다.
항교나 서원 경내에 위치하는 은행나무 노거수老巨樹는 숫놈일 경우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열매를 선사하는 암놈이 당산나무일 수는 결코 없어 그 꼬랑내를 사람들이 견딜 수가 없다. 암튼 은행나무가 당산나무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많으나 그것이 결코 당산나무가 되는 일은 없다.
반면 느티나무나 팽나무는 그와는 달라서, 내 고향만 해도 같은 섬계서원에는 회화나무 거목과 더불어 팽나무 노거수가 있어 당산나무 같은 구실을 하나, 다만, 내 기억에 이 나무를 중심으로 당산제를 치른 일을 본 기억이 나는 없다.
그 전 시대에는 있었는지 모르나, 내가 자란 그 시절 우리 고향은 구한말이라 어째 당산제가 없었다는 점이 조금은 기이하기는 하다.
드라마 우영우가 소개한 창원 팽나무는 딱 그 양상을 보니, 동네를 굽어보는 얕은 야산, 언덕이라 불러야 할 지점에 홀로 우뚝하거니와,
영상이 소개하는 양상을 보니 그 아래 작은 정자가 있어 동네 어르신들이 쉼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듯하며, 나아가 그것이 얼마나 본래의 대지를 훼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편평한 공간이 있어 보나마나 이런 데를 파면 그 아래서는 고고학계 전가의 보물, 그러니깐 제의 관련 시설, 혹은 제의 관련 추정 건물지 같은 것이 나올 데더라.
청동기시대 같으면 저 팽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보나마나 장축 길이 20미터 안팎이 되는 대따시 건물터가 나오는 곳이라, 그 기능이 오리무중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발굴성과로 볼 적에는 공동작업장이니 뭐니 하는 그런 건물이 나와야 하는 곳이다.
저런 언덕은 저런 데 살아보지 아니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낭만으로 바라보는 지점이지만, 너가 한 번 살아 봐라! 사람 살 데 못된다. 왜? 특히 겨울에는 찬바람이 그대로 몰아치는 곳이라 사람이 일상으로 주거하는 공간으로는 쓸 수 없는 데인 까닭이다.
왜 청동기시대 저런 자리에 공동작업장이니 혹은 마을공회장 같은 시설이 나오겠는가?
첫째 사방을 조방하는 위압성 때문이며 둘째는 사람 상거하는 집터로는 꽝인 까닭이지 뭐가 있겠는가? 촌놈들이면 누구나 아는 이 평범성을 정작 고고학계에서는 까막눈인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각설하고 저 거창 남상면사무소처럼 팽나무나 느티나무 노거수 아래에는 고인돌이나 선돌과 같은 거석기념물이 세트를 이루는 일이 아주 많은 까닭은 그곳이 바로 당산제 같은 마을공동체 제의가 펼쳐지는 공간인 까닭이다.
특히 고인돌은 그 넙떼데한 돌댕이가 바둑판 같고 탁자 비스무리해서 놀고 쉬기에는 제격인 곳이라 그런 데서 당산 제장으로 삼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문화재 중 적어도 생물을 대상으로 삼는 천연기념물을 보면, 수종으로 보아 압도적으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많고, 팽나무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몇 군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역시 간단하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혹은 팽나무는 숲보다는 숲 혹은 산과는 유리된 지점에 군락을 이루거나 한두 그루만 달랑 자라는 일이 많아서다.
물론 저들 나무도 숲을 이루기는 하겠지만, 그리 해서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재간이 없으니 산불 때문이다. 잦은 산불에서 저런 숲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저들 나무는 따로국밥으로 자라는 일이 많아 그 인근에서 산불이 나건말건, 아몰랑 나는 괜찮아 하면서 버텨내어 오늘에 이른다. 그래서 저런 나무는 노거수가 유독 많아서지 지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서 오래도록 살아남는 인자를 타고나서이겠는가?
따로 자라고 동네 보살핌을 받으니, 심지어 때마다 막걸리잔까지 받아드시는 분도 계시는 데다 산불에서도 대체로 안전빵이라 유독 늙은 분이 많고 그래서 고인돌을 탁자 혹은 의자로 쓰기도 할 뿐이다.
특별히 저들 나무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요행으로 살아남았을 뿐이다.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으로 우선 보는 파주 육계토성 발굴 (1) | 2022.07.26 |
---|---|
Japanese Hackberry 가 된 팽나무, 식민지의 애환 (0) | 2022.07.24 |
사관史觀, 같은 사안을 보는 다른 관점 (0) | 2022.07.23 |
드라마 '우영우'가 불을 지핀 천연기념물 흥행 돌풍 (1) | 2022.07.21 |
동네북도 아니고, 강화서 쫓겨나는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0) | 2022.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