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북부 발트 해에서 흑인 성인을 만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999년에 복원한 리가의 랜드마크,
블랙 헤드의 집 House of the Blackheads.(왜 번역이 되다 말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구글 지도대로 적어봄)
(일명, 검은 머리 전당)
https://maps.app.goo.gl/XdBBqt3UBHCjzHpy5
https://maps.app.goo.gl/ueF6BvSw2LDjsMt29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이 러시아가 아닌 라트비아 노래라는 것 때문에, 라트비아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NiNtRoHu3VQ?si=T-2hmuXNXp-FTZbN
내가 탈린과 리가를 여행할 때 까지만 해도
라트비아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알려져 있진 않았었는데,
코로나 와중에 난데없이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 리가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약간의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사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Riga는 발트 3국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이자,
발트를 대표하는 에어 발틱 Air baltic의 허브이기도 한 만큼, 나름 큰 도시이다.
유럽내에서는 물가 싸고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손꼽혀서
나름 '유럽 여행 좀 해 본' 지인들에게 추천했을 때 다들 만족스러워 했던 곳이기도 하다.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리가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Riga, 1997년 등재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인 리가(Riga)는 ‘발트 해의 진주’라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리가는 한자 동맹의 중심지로서 13~15세기에 중부 및 동부 유럽과의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초기의 건물들은 대부분 화재나 전쟁으로 파괴되었지만, 중세의 중심지로서의 도시 구조가 이런 번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19세기에는 중요한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중세의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교외 지역이 설계되면서 신고전주의 양식의 목조 건물이 들어서고, 후에는 유겐트 양식(Jugendstil,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리가는 유럽 최고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 (출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
https://heritage.unesco.or.kr/%eb%a6%ac%ea%b0%80-%ec%97%ad%ec%82%ac-%ec%a7%80%ea%b5%ac/ )
리가 여행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깨끗한 도시, 저렴한 물가(사실 탈린->리가->빌뉴스 순이라는데 빌뉴스를 못가봄..),
리가 블랙 발삼, 그리고 블랙헤드의 집 (검은 머리 전당).
검은 머리 전당 House of Blackheads (블랙 헤드의 집), Melngalvju nams
블랙 헤드 Blackheads 형제단의 수호성인은 이집트의 기독교인 Saint Maurice이며 그의 모습은 형제단의 문장에도 그려져 있는데, 수호성인이 이름 때문에 선택되었는지 등의 연유와, 블랙헤드라는 용어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검은머리형제단에 의해 1510년경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리가의 길드에 세워지고 장식되어 졌다는 기록이 검은 머리 전당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건물은 검은 머리 형제단 The Brotherhood of Blackheads 의 본부 건물이다.
검은 머리 형제단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를 연결하는 리보니아 Livonia 지역에서 활동한 미혼 남성 상인, 선주, 외국인들의 연합체였는데 점차 기혼도 가입을 허가하게 되었고, 에스토니아 탈린에도 '검은 머리 전당'이 남아 있다.
검은 머리 형제단은 근세에는 파티, 콘서트 등 사교 행사를 후원하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사회 단체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유일한 '검은 머리 전당' 건물은 탈린에 남아 있지만 리가 만큼 랜드마크화하지는 않았다.
리가의 건물은 1941년 6월 29일 나치 독일과 소련군의 전투로 인해 폐허로 변했고, 이후 1948년 5월 23일 소련 정부에 의해 철거되었지만
1980년대 리가 폴리테크닉 연구소(Riga Polytechnic Institute)의 연구를 바탕으로 1996년부터 재건되어 1999년 12월 9일 공식 오픈했다. 지하실, 벽 일부, 바닥, 나무 계단 등은 중세의 것이다.
이후 대통령 임시 거처로도 사용되었고, 전시실과 회의실 기능도 하고 있다.
인터넷에 보니 요즘에는 입장료에 추가로 돈을 내면 커피를 받아 들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댄다.
아래 내부는 모두 복원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참고 : 인터넷 여행 정보에 간혹 검은 머리 전당에 대해 '모리셔스 출신의 흑인을 수호성인으로 삼아..'라는 설명이 있는데, 모리셔스 Mauritius는 네덜란드 총독(왕자)였던 모리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는 설명이 꼬인 것이다.
'모리셔스가 적도 근처 아프리카고 이름도 비슷하니 흑인 수호성인이겠지' 라는 추측에서인지, 단순한 번역오류인지, 무튼 잘못된 정보가 퍼진 것인데,
3세기경의 이집트인이었던 Saint Maurice는 중세에 와서 갑자기 흑인으로 묘사되기 시작했고(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이 건물과 검은 머리 형제단 문장에는 중세시기의 묘사대로 표현된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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