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퇴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건이 있다.
중소 국경 분쟁이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이미 이 사건은 잘 모르는 시대에 접어들어 조금 설명해 둔다.
이 사건의 이해가 마왕퇴를 둘러싼 전반적 일의 전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까닭이다.
마왕퇴는 문화사적 대발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 정치적 사건이기도 했다.
알다시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는 소련이다.
소련은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발발하고 최후에 공산당이 승리할 때까지도
중국의 혁명역량을 믿지 않았다.
중국은 낙후한 농업국가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소련의 입장에서는 중국혁명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혁명이 아니라 일종의 변종에 가까왔다.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일대를 풍미했던 마오이즘과 북한의 주체사상은 이러한 흐름 안에서 나왔다.
소련과 중국 사이에 감도는 이러한 미묘한 차이와 갈등의 씨앗이 불거져 나온 사건이 바로 중소국경분쟁이다.
이 사건은 중국 동북지역 소련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작은 섬을 둘러싸고
양국 국경수비대 간에 벌어진 충돌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시작된 사건은 아니며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점점 격화되다가
나중에는 포격전까지 비화한 사건이 되겠다.
https://maps.app.goo.gl/TQjdshPrTi83P62W7
Ostrov Damanskiy · 중국 지시 시 후린 시
★★★☆☆ ·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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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국경 분쟁 빌미가 된 양국 국경지대의 섬
요즘도 인도와 중국 간 국경선에는 가끔 육박전이 벌어지지만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섬의 소속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양국 수비대가 서로 육박전을 벌이고
나중에는 한쪽이 발포하여 2주간에 걸쳐 탱크와 장갑차까지 동원한 전쟁이 되어 버렸다.
이 전쟁으로 양국에서 천명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다.
문제는 이 전쟁으로 끝이 나버린 것이 아니라,
당시는 스탈린 격하운동으로 집권한 흐루시쵸프의 시대였는데,
중국의 마오는 흐루시초프를 수정주의라고 격렬히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한 소련 역시 중국을 공산국가 변종으로 보던 시각을 발전시켜
중국은 까불면 핵무기 공격까지 해버리겠다고 쏘아 부쳤다.
당시 중국은 핵무기는 개발이 되었지만 소련에 대해 이를 투하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지라
1969년 당시 소련의 이러한 대응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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