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코딱지만한 이 그림이 침소봉대한 까닭은 교과서 때문이었다.
누구 글이었는지 모르나 이 그림을 소재로 삼은 글 한 편이 국어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적어도 내 세대엔 프랑스 미술, 나아가 밀레라고 하면 이 만종을 떠올리게 된다.
각인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주는 한 보기다.
뭐 그 글을 다시 읽어봐야겠지만, 종교적 경건성을 말해주는 일화로써 어떤 농부 부부가 밭일을 하다가 교회 종소리를 듣고 기도한다 뭐 이랬던 거 같다.
지가 그러지 못하니, 부럽다 이거겠지.
개독들을 위한 절대의 성전, 그것이 바로 만종이었다.
문제는 그 성전이 개독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데 한국사회의 비극이 초래한다.
성전...그건 너희만을 위한 것이지, 그것을 왜 남들한테 강요한단 말이더냐 이 개독들아.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그건 그렇고 이 그림은 그림보다 액자가 훨씬 더 비쌀 듯
(2017. 8. 17)
***
이 만종은 우리 세대엔 이발소에 단골로 걸리는 그림이었다.
만종은, 밀레는 바리깡들의 신이었다.
반응형
'문화재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상파와 셀카 (0) | 2020.08.18 |
---|---|
Gosudonggul Cave, Danyang 단양 고수동굴 (0) | 2020.08.17 |
완당의 이모티콘 (2) | 2020.08.16 |
가채만 남긴 혜원의 여자 (1) | 2020.08.15 |
1950. 6. 25 일기 (0) | 2020.08.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