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현장

먹탁본을 축출한 눈탁본

by 한량 taeshik.kim 2021. 1. 27.

청송당유지廳松堂遺址라 썼다. 청송당이란 우계 성혼의 부친 성수침의 당호로 안다. 

 

기대승奇大升(1527~1572) 문집인 《고봉집高峯集》 제3권 비명碑銘이 수록한 파산坡山 성 선생成先生 묘지명[坡山成先生墓誌銘]에 이르기를 성수침成守琛(1493~1564)은 "집이 백악산白嶽山 아래에 있었는데 소나무 숲 사이에 서실을 짓고는 청송당聽松堂’이라 편액했다" 했으니, 아마도 이곳을 말하는 듯하다.  

 

 

광무 7년 계묘 光武七年癸卯 / 중추 동농 中秋東農 이라 각자刻字했다. 

 

광무 7년은 1903년이며, 동농은 조선 말기 문신이며 나중에 독립운동에 투신한 김가진金嘉鎭(1846~1922) 호다. 



먹탁본[墨拓本] 시대는 갔다.
눈탁본[雪拓本]이다.

(2017. 1. 22)

 

*** 

종로 경기상고 경내 각석刻石이다. 4년전 이맘쯤 조폭답사반 답사 때 시도한 새로운 탑본榻本 방식인데 눈이 많이 와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여건만 맞으면 아주 유효하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