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서도 썼지만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향촌 사족들의 명망가 코스프레가 실상보다 매우 부풀려진 데다가,
경화사족의 권세와 힘, 그리고 비중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조선후기 정국이 일당 독재로 가면서 서울에 살던 몇 안되는 사족이
권세를 누리며 오렌지족처럼 살던 족속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고,
지방의 명망가 사족들에 의해 서울의 몇 안되는 경화사족들이 포위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그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일차사료를 조금만 뒤져봐도
조선시대 내내 서울 사는 사족들의 힘과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비교의 대상이 안 되는 정도의 차이인데
왜 경화사족이 몇 안 되는 서울 양반 집 유한 자제들처럼 채색되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서울은 당시 절대다수의 진사, 대과 급제자, 무수히 많은 무과 급제자가 모여 있었고
특히 대과 급제자는 물론 무과급제자들도 서울 사는 이들은 실직을 받아
과거 급제해도 변변하 벼슬 없이 전전해야 하는 향촌 사족과는 격이 다른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약용이 그 자제에게 너는 절대로 지방 내려가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이
단순히 이색적인 이야기로 치부될 수가 없는 것이,
당시 수도에 몰린 문무과 사족들의 힘을 생각해 보면,
낙향한다는 것은 곧 그 집안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필자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는
지나치게 사림의 눈으로 전체 역사를 조망하는 방식으로 쓰여졌으며,
향촌의 사족들의 힘이 크게 과정되어 있다고 누차 지적한 바 있지만,
그 반대로 서울 지역에 세거하던 사족들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조선후기 경화사족 이야기를 하면서 오렌지족처럼 다루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조선을 좌지우지한 핵심세력들로서
조선시대사를 이들의 눈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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