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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문고본 시대의 재림을 꿈꾸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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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본 시대의 재림을 꿈꾸며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이는 아래에 게재됐다. http://www.nl.go.kr/upload/nl/publish/201306/book-data/4.pdf 

출판 경향이라는 점에서 볼 때, 60~70년대 한국 출판계는 문고본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내 세대 사람들에게도 그런 문고 전성시대의 향취랄까, 여진은 남아 있다. 삼중당문고로 문학을 접했고, 을유문고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했으며, 그 외 무수한 문고가 있었다. 문고본은 주머니가 얄팍했던 가난한 학생에게 저렴한 가격에다 휴대의 편리함까지 주었으니 그 혜택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문고본 중 상당수가 여전히 서재 한 켠을 채우거니와, 나 같이 책이 많으면서도 더러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책이라면 하드커버 일색에 무겁기는 쇳덩이 같기 만한 것들은 그 어느 때보다 문고본 시대의 부활을 꿈꾸게 한다. 당시 문고본의 또 다른 장점 하나는 글자 그대로 포켓판이라, 직장인 양복 주머니에도 쏙 들어간다는 점이다. 

한데 이런 문고본이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아예 종적을 감춘 듯하다. 이는 이웃 일본의 출판사정과 무척이나 비교가 된다. 출판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은 ‘문고의 왕국’이라 할 만하거니와, 국내에서는 그것이 멸종하다시피 하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출판계의 큰 몫을 담당한다. 요즘은 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듯하지만, 여전히 나같은 사람에게 일본 책은 비싸기만 하며, 특히 하드커버 책 구입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사정에서 일본 문고본은 우리에게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인 데다 그것이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고 학술적 깊이 또한 하드커버 판에 못지 않아 일본에 갈 때면 늘 이런 문고본을 사오곤 한다. 




국내 출판가에서도 근자에 몇몇 출판사를 중심으로 문고본의 부활을 꿈꾸는 조짐이 있다. 실제 두어 출판사에서 시도하는 문고본 시리즈는 출판가와 독자 양쪽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체감하는 불만은 적지 않아 그것을 나름대로 정리해 볼까 한다. 

요즘 식당에서는 조그맣게 돌돌 말린 물수건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엄지손가락만한 이 물수건은 물을 부으면 부풀어 올라 물수건이 되는데, 나는 문고본과 일반 단행본 또한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문고가 아무리 판형이 작고 원고 분량이 단행본에 비해 적다 해도, 그것이 응축한 내용과 문제의식은 단행본에 못지않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요즘 국내 문고본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마치 물을 부어도 좀체 늘어나지 않는 물수건 같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나는 문고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이런 문제가 비롯된다고 본다. 문고본과 일반 단행본을 비교할 때 전자는 후자를 발췌하거나 축약한 판형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체로 출판사도 그렇고, 원고를 작성하는 필자 또한 이상하리만치 문고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곤 한다. 요즘 인문학 쪽 기준으로 학술지 논문은 대체로 분량이 100~150매다. 한데 작금의 문고본은 이 논문을 적당히 분량만 늘린 모습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준다. 문고는 논문으로 작성하기에는 좀 길고, 일반 단행본으로 엮기에는 분량이 적은 ‘어중간’이 아니다. 문고는 엄연히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또 다른 ‘단행본’이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60~70년대를 구가한 문고의 재판 현황과 지금의 현황을 비교했을 때 더욱 잘 드러난다. 실례는 제시하지 않겠지만, 당시의 문고 중에 요즘 일반 신국판으로 새 옷을 갈아입는 책이 더러 있다. 문고본이 문고본으로 재탄생하지 못하고 왜 판형이 바뀌어야 하는지 안타깝지만, 여러 사정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런 이유는 차치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목은, 과거의 문고본은 그렇게 새로운 판형으로 갈음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량이 요즘의 일반 단행본 못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당시의 문고가 또 다른 단행본으로 기획됐기 때문으로 본다. 그렇기에 그것을 새롭게 조판하고 판형과 글자를 키운다 해도 이상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우리 문고 중에서 반성해야 할 대목은 ‘발췌’가 많다는 점이다. 애당초 그 자체로 완결품이었을 전체에서 일부만을 뚝 떼어내 문고본에 어울리는 크기의 분량으로 줄인 사례가 너무 많다. 이는 동서양 고전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데, 예컨대 원본 전체 분량이라 해 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논어나 노자조차도 어떤 문고본에서는 그 일부를 잘라내어 문고본을 만든다. 원전 잘라내기 현상은 큰 부피의 고전으로 옮겨가면 더욱 극심해져 심지어 어떤 문고본은 원전의 10분의 1을 감량한 것도 있다. 이로 볼 때 문고본을 출간하는 국내 출판가에서, 문고는 반드시 한 권 단위로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고는 이런 모습이 아니다. 하나의 문고본으로는 분량이 부담스럽다면 2권, 3권으로 분책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축약이나 발췌가 아주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의 문고본이 내재한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대목은 판형이다. 나는 문고본이 포켓판과 반드시 같은 개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내게 익숙한 문고본은 포켓판이었다. 포켓판은 양복 호주머니에 부담없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요즘 문고본 중에도 이런 포켓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것은 그것을 집어넣으면 호주머니가 찢어질 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왜 우리의 문고본에는 하드커버나 준(準)하드커버 판형이 그리 많은지도 모르겠다. 내지가 너무 뻣뻣해 굽히기 심히 곤란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표지까지 하드커버를 씌워놓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새로운 문고본의 시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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