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다양한 사회적 구조 위에서 피어난다.
한국과 일본-.
임란 이전 상황을 보면 이렇다.
한국:
목판인쇄물이 다량 나오며
과거제가 11세기 이후 계속된다.
한문의 이해와 그 배경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식자층 외에는 문자 그대로 그 외에는 까막눈.
이번에는 일본:
목판인쇄물의 기원은 헤이안시대까지 올라가지만,
한국만큼 보편화하지는 못했다.
책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인쇄본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쇄된 것이 많다.
심지어는 칙찬서도 필사본이다.
무가정권 이후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
심지어는 스승을 자처하는 이들도 한문을 쭉쭉 읽어내려가는 이들이 드물다.
한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공경 아니면 스님으로 숫자가 많지는 않다.
그런데...
15세기 조선의 기록을 보면 일본사람 대부분은 "글을 읽을 줄 안다"라고 한다.
여기서 이 "글"이 뭘까?
그렇다. 일본의 국문. 가나로 써내려간 글을 말한다.
그래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는 무려 15세기의 저작인데도,
일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녀를 따질것 없이 다 제나라 글자를 익히 알고 있으나, 대체로 오직 중들만이 경서를 읽으며 한자도 잘 안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다 안다는 "제나라 글자"는 가나다.
한자로 된 경서는 중들만이 안다는 뜻이다.
17세기의 간양록에서 강항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글자나 안다는 건 다 이 가나를 안다는 것이지 한문을 익히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왜 중들 가운데에는 한문에 익숙한 무리들이 많고.... 소위 장군이라는 자들도 문자를 아는 놈은 한놈도 없고 그들이 쓰는 글이란 우리나라 이두와 같은 글자를 쓰고 있으며 그 글자의 뜻을 물어보면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다. 무경칠서 같은 책들이 있기는 하나 그대로 간직해 둘뿐 반줄도 내려 읽는 놈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논어와 가어를 가지고 이에야스의 선생이 되어 있으나 고기 어짜와 노나라 노짜를 가리지 못할 정도의 선생이라 한다...."
역시 여기서도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한문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 (한자가 아니라 한문이다).
그런데 가나는 누구나 다 읽고 쓴다는 것.
필자가 보기엔 일본의 이 시대 가나의 해독률은
한국의 한자해독률은 물론,
한글해독률보다도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두 나라 문명의 구조가 낳은 것이 바로,
16세기 조선에서 무려 133권짜리 한문학 총서 동문선이 나온 그 시기에,
일본에서는 15세기까지 일본고유어의 와카집 칙찬 와카슈가 무려 21차례나 나오고, 또 필사되는것이다.
양국 문명 구조의 차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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