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수렵채집민이 농경으로 넘어 온 후에
우리 생각에는 이들이 건강상태도 좋고 스트레스도 덜한 인생을 살게 되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인골을 분석해 보면 이와는 반대란 것이다.
농부가 수렵채집민보다 스트레스도 많고 또 체형도 왜소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농경으로 넘어갔을까?
이건 수렵채집 - 농경 이행기의 유명한 파라독스다.
여기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바 그 중 이유의 하나로 생각해 볼 만한 것은
농경으로 일단 넘어간 이후에는 스케줄이 너무 바빠 관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한번 농경을 시작하면
오늘은 뭐 하고 내일은 뭐하고 일정이 너무 빠듯하게 구성되어 일년 내내 살아야 하니
농경을 포기하고 수렵채집으로 다시 돌아갈 엄두도 안 날뿐 아니라
그냥 하던 농사일 계속 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로 고착화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반농 반수렵이라는 것
말은 쉽지만 그게 더 어렵다는 말이다.
수렵하려면 수렵을 하던가
농사를 지으려면 짓던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지
원시적인 농경이라는 것을 상정해 놓고,
농사도 짓고 수렵채집도 했다는 건데
그런 게 가능할 정도로 농경이 만만하지 않다는 말이다.
지금도 투잡을 하면 그 사람은 다니는 직장에서 욕을 먹는데
농부라고 남는 시간에 꿩사냥이나 멧돼지 사냥을 다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라는 말이다.
그 양반들도 다 나름 바쁜 사람들이라 일정이 꽉 차 있었음에 틀림없고
애초에 수렵과 농경 투잡이란 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이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원시적 농경론에 있어서도 한 번쯤 참고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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