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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백화수피白樺樹皮 논쟁을 끝내버린 황남대총 고깔

by 한량 taeshik.kim 2020. 9. 17.

 

 

 

황남대총을 구성하는 두 봉분封墳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다 해서 남분南墳이라 일컫는 데서 출토한 유물로 딱 한 번 대외로 공개된 적이 있다. 

 

그때 박물관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백화수피제 고깔과 관장식 
白樺樹皮帽冠裝飾 
Birch-bark Cap Fragments and Branch-shaped Ornaments

 

 

같은 사진을 좀 확대해 본다. 

 

 

 

 

 

이 유물이 중대성을 함유하는 까닭은 첫째, 백화수피 활용 시점을 끌어올린 점이요, 둘째 그 정체를 실상 자작나무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신라가 백화수피를 활용한 이용해 여러 용도로 활용해 사용한 시점을 종래에는 6세기 초반 무렵 축조로 보는 천마총 출토 장니 천마도를 통해 추정했다면, 그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신라가 이걸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인 까닭이다. 

 

황남대총을 언제 만들었는지 논란이 분분하나, 천마총보다는 100년 정도 빠르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한다. 

 

나아가 이 나무껍질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아, 누가 봐도 자작나무 껍질이다. 

 

종래 백화수피라고 보고한 것을 한치 의심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목재조직학이 본격 문화재 현장에 도입하면서 그렇게 안이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으니, 백화白樺라 표기하는 나무만 해도 산벚 왕벚나무니 은사시나무 하는 유사 수종이 있어 자작으로 결정할 수 없다 했으니 

 

이 유물은 그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몽골 고원의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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