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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벽화로 장식한 북제北齊시대 서현수묘徐顯秀墓

by 한량 taeshik.kim 2020. 6. 28.

Tomb of Xu Xianxiu


Tomb of Xu Xianxiu, is located at Wangjiafeng Village, Haozhuang Township, Yingze District, Taiyuan City, Shanxi Province. In October 2002, archaeologists unearthed the tomb to find a total of more than 500 artifacts such as 320 pieces of pottery figurines and more than 200 pieces of porcelain. 

 

北齊徐顯秀墓

 

 

百度地图

 

map.baidu.com

*** 지도상에서 정확한 지점을 내가 표시할 수가 없다. 대충 이 언저리라 알아두면 된다. 

 

 

어쩌다 2010년 8월 여름, 산서성 일대를 가게 되었다. 휴가였다. 지인들이 가는 자리에 한 다리 걸쳤으니, 나로서는 그 이전 2004년인가 그 무렵 산서성 답사가 여러 모로 아쉬움이 컸으니, 그리하여 그것을 보완할 기회로 생각했거니와, 생각지도 못한 데를 경험하기도 했다. 

 

개중 한 곳이 아래 소개하는 북제시대 서현수 벽화묘인데, 이건 애초 계획에는 들어있지도 아니했다. 현지에 가서 이러저러하다가 이런 데가 근자 새로 발굴됐으니, 그 현장을 볼 수 있다 해서 여차저차해서 들어갔고, 삼엄함을 뒤로하고 다행히 촬영을 허가하는 바람에 몇 컷을 건지게 되었다. 

 

이런 소식은 그냥 둘 수는 없다 생각해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현장에서 본 것들을 중심으로 르포라는 형식을 빌려 기사화했다.

 

기자는 다 그렇다. 휴가라 해도, 이것이 쓰야만 하는 것이라고 하면 쓴다. 나 역시 그런 평범한 기자였다. 

 

인물도. 등장 남성 대부분은 서역인. ⓒTaeshik Kim 

 

2010.08.22 10:15:00
<르포> 고구려의 이웃 北齊 벽화묘를 가다
산시성 서현수 묘실 곳곳에 원색 그림 가득 

 

(타이위안<太原>=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평균 해발고도 1천500m 안팎이라는 중국 화북평원 황토 대지는 강렬한 한여름 태양 아래 더 푹푹 쪘다. 40도에 이른 듯한 무더위를 잠시 쉰 배나무 과수원에 맡긴 채 꽤 가파르게 난 무덤길을 따라 10m 정도를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찬바람이 들이친다. 

 

1천500년 전 북제(北齊.550-577년) 왕조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571년에 사망한 서현수(徐顯秀)라는 인물의 묘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성도(省都)인 타이위안(太原) 교외의 한적한 배나무 과수원 황토대지에 위치한 이곳은 지표면 기준으로 무덤방 바닥까지는 8.1m라고 한다. 

 

인물도. 등장 남성 대부분은 서역인. ⓒTaeshik Kim

 
 
기자가 최근 이곳을 찾은 것은 북제가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따라서 벽화들이 고구려 고분과 많이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실제 사자(死者)가 잠들었을 무덤방인 묘실(墓室)에 들어서기도 전에 고구려 벽화고분을 찾은 듯한 감흥이 인다. 무덤방으로 통하는 묘도(墓道) 양쪽 벽면에는 사자를 호위하듯 의장대 그림이 원색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벽화는 그 선명함이 우선 놀랍다. 묘도가 끝나고 묘실로 들어가는 길목엔 아치형 대문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온통 벽돌 구조물이다. 대문 양쪽엔 채찍으로 보이는 물건을 든 인물 그림이 또렷하다. 문을 지키는 관리인 문리(門吏)일 것이다. 고구려 벽화고분 중 안악3호분에서 보이는 문지기인 장하독(帳下督) 정도에 해당할 듯하다. 
 
대문 위 아치형 부분에는 붉은색이 완연한 귀면(鬼面) 같은 그림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는 피닉스 같은 사나운 새가 보인다. 이 귀면은 아무래도 용을 형상화한 듯하며, 양쪽 피닉스는 봉황, 혹은 주작인 듯했다. 이른바 용과 봉황을함께 표현한 용봉(龍鳳)화인 것이다. 용봉은 '무덤에 들어오지 말라, 들어오면 다친다'는 경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인물도. 등장 남성 대부분은 서역인. ⓒTaeshik Kim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별천지가 나타난다. 평면은 대략 방형이며, 지붕은 궁륭형으로 쌓아올린 널찍한 묘실로 들어선 것이다. 지붕을 제외하고 네 벽면은 온통 벽화 천지다. 
 
기자가 최근 찾은 이 서현수의 무덤은 여러 차례 도굴을 당한 뒤인 2002년에서야 산시성문물고고연구소가 정식 발굴조사를 개시한 곳이다. 그 결과 묘지명(墓志銘)이 출토돼 무덤 주인공도 밝혀졌다. 묘지명에는 서현수가 역임한 관직을 태위(太尉)·태보(太保)·상서령(尙書令)무안왕(武安王)이라고 적었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급에 해당하는 관직은 모조리 역임한 당대의 실력자였던 것이다.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마련하고, 묘실은 남쪽으로 뚫은 묘실에 들어서니 바닥면 왼쪽 편, 그러니까 묘실 서쪽 바닥에 관(棺)을 놓았을 시설이 눈에 띈다. 벽화는 구역별로 뚜렷이 구분된다는 느낌을 준다. 

 

묘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북벽 정중앙에는 무덤 주인공인 서현수와 그의 부인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묘주(墓主) 부부가 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서쪽(왼쪽편)에는 말이 중심인 행렬도가 있고, 그 맞은편 동쪽에는 소가 끄는 행렬도가 확연하다. 

 

묘실(墓室) 남쪽 벽화. 몸은 사람, 그 외는 동물 특징을 농후하게 보이는 역사(力士)인 듯하다. ⓒTaeshik Kim


 
묘주 부부는 방형 장막을 지붕처럼 올린 침상에 나란히 앉았는데 모두 칠기 그릇을 손에 쥔 채 무엇인가를 먹고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들 앞으로는 각종 칠기 그릇이 가지런한 밥상이 있고, 부부 양쪽으로는 이들을 시중드는 시종이 가득하며, 개중에는 비파인 듯한 악기를 뜯는 모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묘주 부부는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한창 식사 중인 모습을 형상화한 듯했다.

 

어느 쪽이 서현수며, 그의 부인인지는 언뜻 분간하기 곤란하다.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그림에서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 편(서쪽)이 서현수일 것이라는 짐작만 가능케 했다. 

 

동ㆍ서쪽 행렬도는 화려하기 짝이 없다. 의장대는 기다란 장대에 꽃은 깃발을 펄럭이며 보무당당하게 행진한다. 아마도 묘주가 생전에 행차하던 모습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묘주를 위한 양산도 보이지만 접은 상태인 점이 수수께끼다. 시종 중 남성은 거의 예외없이 코가 유난히 큰 서역인이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묘문(墓道) 서측 문지기. ⓒTaeshik Kim

 

묘문으로 통하는 남쪽 벽면에는 사람 몸통을 제외한 나머지 팔, 다리는 괴수인 두 역사(力士)인 듯한 그림이 완연하다. 헌데 이 괴수는 혀를 내민 채 몸을 거꾸로 세워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이 그림을 통해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을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오색 찬란한 벽면과 대비되어 별다른 장식이 없는 궁륭형 천장이 들어온다. 천장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세 군데 정도 구멍이 뚫렸다. 도굴 구멍이다. 사람 몸통이 겨우 지날 만한 저런 구멍 하나를 뚫고는 밧줄을 타고 내려와 귀중품을 훔쳐갔을 것이다. 잇따른 도굴 피해 때문에 막상 정식 발굴을 했을 때 출토 유물은 많이 수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도굴꾼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렇게 정확한 지점을 찾아 구멍을 뚫었을까. 중국의 다른 지역 전축분(塼築墳. 벽돌무덤)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목도한 기자를 새삼 놀라게 하는 '도굴 기술'이다. 

 

사도斜道 ⓒTaeshik Kim

 

 

볼썽사나운 도굴 구멍을 제외하고 천장에는 언뜻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곳곳에 흰 점이 있었다. 별자리를 표시한 이른바 성수도(星宿圖)인 것이다. 

 

선비족 탁발씨 후예들이 세운 북제는 중국사에서는 단명했지만, 고구려와 직접 국경을 맛댄 왕조다. 그러므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며 이 서현수 고분벽화 또한 여러모로 고구려 고분벽화와 상통한다. 
 
북한의 고구려 벽화고분은 쉽게 갈 수 없고, 중국의 고구려 벽화고분은 고작 지안 지역 오회분 정도만 공개되는 실정이니, 그것을 직접 체감할 수 없는 아쉬움을 북제의 서현수 벽화고분으로 달랬다.

 

taeshik@yna.co.kr

 

현실玄室로 통하는 문. 양쪽에 장하독으로 보이는 인물 둘이 배치됐다. ⓒTaeshik Kim

 

***

 

서현수徐顯秀는 누구인가? 

502년에 나서 571년에 향년 70세로 죽은 정치가로 北齊 정권에서 태위太尉 태보太保 상서령尚書令을 역임한 실력자다. 

이름은 영穎이며, 현수顯秀는 字인데, 자로 주로 행세했다. 항주恒州 충의군忠義郡(지금의 하북河北 북부) 사람으로 소년시절에 호협豪俠하고 작전에서 용맹성을 발휘해 전공을 계속 세워 승진을 거듭했다. 

하정河靖 3년(564)에 군사작전에서 영웅성을 발휘해 무안왕武安王에 봉해졌다. 

북제 정권 수립 이전 북위北魏 말기에는 이주영爾朱榮 군대에 참여했지만 이주영이 패하자 당시 실력자 고환高歡한테 귀순하고 동위東魏 정권에서 고속승진했다. 

 

玄室 북벽 묘주 부부로 생각되는 인물상. 왼편(보는이 기준 오른쪽)이 남편, 반대편이 부인일 것이다. 부부가 개밥그릇을 들었다. ⓒTaeshik Kim



571년에 진양성晉陽城 안 부제府第에서 죽었다.

그의 행적은 다음과 같은 데서 발견된다. 

《북제서北齊書》 권8 《후주기後主紀》에 이르기를 “(天統四年)三月乙巳,太上皇帝詔以……開府儀同三司徐顯秀爲司空。”

《북사北史》 권8 《제본기齊本紀》에 이르기를 “(後主天統五年)三月丁酉,以司空徐顯秀爲太尉。”

《수서隋書》  권71 《유원전遊元傳》에 이르기를 “元少聰敏,年十六,齊司徒徐顯秀引爲參軍事。”

다만 《수서隋書》에서 서현수를 일러 “사도司徒”라고 한 대목은 아마도 “사공司空”의 오류로 보인다. 

 

소팔러 가는 듯. ⓒTaeshik Kim



그의 묘가 발견됐으니 서현수묘徐顯秀墓 개황은 다음과 같다. 

그의 묘는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 영택구迎澤區 학장향郝莊鄉 왕가봉촌王家峰村 동쪽 이른바 “왕묘파王墓坡”라는 곳에 위치한다. 2002년 10월 산서성과 태원시 문물고고연구소文物考古研究所가 왕가봉 북조 벽화묘 고고대 王家峰北朝壁畫墓考古隊를 조직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출토 기물은 도합 500여 건이며, 개중 도용陶俑이 320여 건이고 자기瓷器가 약 200여 건이다. 

 

서현수벽화묘 전문박물관 조감도. 열라 부럽다. 



특히 벽화가 발견되어 중대한 성과로 꼽힌다. 벽화는 묘실 전체에 고루 걸쳐 발견되며 보존상태가 특히 좋다. 채회 벽화彩繪壁畫가 발견된 데는 3천300평방미터에 달하며, 기세가 웅대 장관이며 그 묘사한 그림은 생동감 있다. 

벽화는 소재별로 인물、마필馬匹、우차牛車、신수神獸,각색 의장儀仗、병기兵器、악기樂器、생활집물, 그리고 장식도안 등으로 나뉜다.  

참고문헌 
常一民,裴靜蓉,王普軍. 太原北齊徐顯秀墓發掘簡報. 《CNKI》 , 2003  
鄭岩. 北齊徐顯秀墓墓主畫像有關問題. 《 VIP 》 , 2003   
榮新江.  略談徐顯秀墓壁畫的菩薩聯珠紋. 《 VIP 》 , 2003 
張慶捷,常一民. 北齊徐顯秀墓出土的嵌藍寶石金戒指. 《 VIP 》 , 2003 
常一民. 北齊徐顯秀墓發掘記. 《 WanFang 》

 

서현수묘가 위치한 왕가봉묘군 ⓒTaeshik Kim

 

***

 

이후 현장이 어찌 처리될지 무척이나 내가 궁금했거니와, 찾아보니 박물관 건축이 추진되는 모양이다. 

 

 

 

王家峰改造规划北齐壁画博物馆_山西龙城太原_新浪博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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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연건거사 2020.06.28 20:19

    어이쿠 소팔러 가는 그림 고구려 벽화에서도 비슷한걸 봤는데 아무래도 하위호환버전인듯
    답글

  • 四叶草 2020.06.28 21:46

    설명에 牛车라는 말이 나오는 걸로 보아 소는 수레를 끄는 것 같은데요. 중국관리부부가 행차하는데 외국인이 바글거리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답글

  • 연건거사 2020.06.29 00:14

    북제는 탁발씨 아님.....
    답글

  • 四叶草 2020.06.29 02:25

    설명이 약간 더 필요한 듯 합니다. 선비족 탁발부가 세운 건 북위이고, 거기서 나중에 북제가 갈려나오긴 했지만, 북제 창시자인 고환은 강태공의 후예인 강성 고씨(高氏)라고 합니다. 한족인데 선비족 족장에게 귀순한 자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도자 혈통으로는 고구려와 별 관계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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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6.29 08:48

    북조에서 북위 이후의 국가들을 선비족 계열이라 부르는것은 큰 문제 없어 보이고요.. 다만 탁발씨와 선비족이 동의어는 아닌듯합니다.. 선비족안에 탁발부, 우문부 등 여러 계열이 있었고 북위가 동위, 서위로 나뉘면서 서위는 우문씨 계열이 장악하고 동위는 고씨가 장악해서 각각 북주와 북제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선비족 계열 (ㅇ); 탁발씨 (x)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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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6.30 11:11

    이 벽화는 정말 보면 볼수록 대단합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