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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사도광산과 국제무역

by 초야잠필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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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이 한일간 이슈가 되어 이 부분은 워낙 많이 다루고들 있어 생략한다. 

여기서는 사도광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좀 써보겠다.

사도광산은 탄광이 아니다. 금과 은을 캐던 광산으로 

전성기는 에도시대이다. 

이 사도광산은 일본사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에도시대 전기에 사도광산에서 나오는 금과 은으로

일본은 국제무역에서 결재를 했다. 

당시 일본도 어차피 서양과 무역에서는 팔 물건이 없었으므로 

금과 은을 결제수단으로 하여 거래한 것이다. 

사도광산이 없으면

일본에는 난학이고 나발이고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상인들이 가져갈 것이 없으니 무역하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도광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일본은 원래 금과 은 제련기술이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16세기 경 조선에서 금과 은을 제련하는 기술 (회취법)이 들어가 

비로소 광산에서 나오는 원석을 제련하여 금과 은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 에도시대에 서양과의 무역에서 

전반기는 금과 은, 

후반기는 도자기를 주요 수출품으로 냈다고 본다면, 

두 가지 모두 조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다. 

일본에 제련기술과 도자기를 전해준 조선은 

정작 자기 역사에서는 이것을 제대로 써먹지를 못했다. 

우리 조선시대에는 구리로 만든 상평통보만 있었지만 에도시대에는 금화와 은화도 있었다. 이 금이 바로 사도광산 등 금광에서 나왔는데 이 원석에서 금과 은을 뽑는 기술은 조선에서 들어갔다. 이렇게 제련한 금과 은은 국내 화폐공급에 이용되었고 국제무역에서 결제수단이 되었다. 에도시대 후반이 되면 금과 은 대신 도자기 등 상품으로 서양과의 무역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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