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 화백이었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수제자였던 그는 한국화 근대 6대가로 꼽힐 만큼 대단한 산수화 실력을 자랑했고 거기 덧붙여 뛰어난 사회풍자만화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생계수단으로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그렸는데,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 4컷만화 <멍텅구리>도 그의 솜씨다.
상당히 긴 기간 연재했고 그만큼 소재도 다양해서, 최근에는 이를 소재로 일제강점기 생활문화사를 연구하는 논저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물론, 이 때문에 뒷날 <친일인명사전>에 오르게 되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순종황제가 승하하여 조선 전역이 비통해하던 1926년 4월 28일자 <조선일보>에 노수현의 만화가 실린다.
<멍텅구리>의 주인공들이 단엽 프로펠러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컨셉의 만화인데, 여기서 그들이 기자의 '금자탑'과 '스핑쓰'를 만나지 않는가.
ㅡㅡㅡ
"이 사람, 왜 웃나?"
"오천년 전에도 멍텅이가 있던 모양이야. 무덤을 이렇게 튼튼히 하면 시체가 부지할 줄 알았지만 저 속엔 텅 비었다네."
"저 사람은 오천년을 두고 말을 않고 있으니 자네 말 좀 시켜보게."
흥흥!
"그래 뭐라고 하던가?"
"세상 사람이 말이 너무 많은 까닭에...나를 닮아서 말을 좀 적게 하라고."
ㅡㅡㅡ
노수현은 훗날, 왜 그토록 산수화를 그리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세상에 대한 울분을 푸는 데는 산수화만한 것이 없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글쎄, 어쩌면 노수현은 젊어서 이런 만화를 그림으로써 속에 쌓인 '울분'을 조금이라도 풀었을는지 모른다.
만화에서 손을 떼게 됨으로써, 산수화라는 오브제를 다시 발견하고 비로소 거기 침잠하게 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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