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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 지방을 짓누르는 중앙 압제의 또 다른 얼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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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완 관장의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토론

심민호 (대전 중구 한국족보박물관)

 



2016년 박미법 개정으로 시행된 평가인증제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발표자와 토론자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박물관평가 인증제 도입으로 3년마다 업무량이 중과되는 작은 공립박물관의 현실을 실무자의 입장에서 전달하는 것으로 발표자의 논지를 보완하고 지지하고자 합니다.

국가는 기관 및 시설의 설립을 장려하는 정책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규제하는 정책으로 전환한다.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요양병원 등 국가에서 일시에 주도하여 설립하기 어려운 시설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에서 설립하도록 장려한 뒤, 난립 혹은 운영 부실을 빌미로 기존에 설립된 기관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이때 평가를 받는 대상이 된 개별 기관은 비영리 단체이거나 수익이 거의 발행하지 않는 기관들로 운영비 확보를 위한 지원금(보조금)을 받기 위해 평가에 사활을 걸게 된다.

평가를 무사히 통과하여 인증기관으로 지정받게 되면, 국시비 지원을 받기 위한 공모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기에, 평가인증은 최소요건이 될 뿐, 평가를 무사히 받아 인증 기관이 되었다는 보상 체계는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관의 경우 내부 직원에게 일부 금전(포상금, 격려금)이 지원되는 사례가 있으나, 대부분 평가인증제에 따르는 직접적인 보상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보상체계가 없는 평가에 임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립박물관의 입장에서 현행박물관 평가인증제는 그야말로 잘하면 본전인 셈이다.

의회의 행정사무감사, 감사실의 종합감사 등과 다를 바 없는 보조자료를 문체부에 제출하고 있는 모양이다.

 



회계문서와 인사, 복무 관련 문서를 제외하고 사업부분만 본다면 감사자료 준비보다 더 방대하고 세세한 자료들을 박물관 평가인증 자료로 제출하고 있다.

평가를 소홀히 하여 탈락하게 되었을 때 국비 지원 사업 공모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패널티를 피하기 위해, 평가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당근은 없고 채찍질만 난무하는 제도가 박물관 평가인증제다.

기관의 설립 단계에서 실시하는 등록이나 허가는 일정 요건을 구비한 경우 승인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 시스템이다.

그러한 기관으로서 요구되는 최소 요건을 말한다.

평가인증제는 기관의 운영에 대해 점검하는 것으로 개별법과 제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상대평가로 운영된다.

물론 과락을 면해야 하기에 절대평가의 요소를 내포한다.

현재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는 70%이내의 인증률과 인증을 통과하기 위한 채점 기준과 점수 획득 요건가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기에, 평가를 받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상대평가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중앙부처의 지자체 공립박물관 줄세우기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공립박물관평가인증제에 참여하는 지방 공립박물관의 현실은 참혹하다.

광역에서 운영하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에 속한 공립박물관은 학예사 1~2인에 의존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평가인증제를 통해 개선하도록 하겠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발언은 평가에 반대하는 공립박물관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이다.

실제 기초자치단체에서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 업무는 해당 박물관 학예사의 업무로 배정되기 마련이다.

1~2년 마다 순환보직으로 배치되는 행정직, 시설직 입장에서 박물관이 평가인증 통과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대체로 사업소 형태로 운영되는 박물관이 사라지면, 시,군,구청에서 일하니 영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방 공립박물관이 평가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은 학예사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학예사가 1-2명 뿐인 기초자치단체에서 박물관 평가 탈락의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으로 박물관 담당 학예사를 지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직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 예산의 문제라면 지방정부의 기획실, 총무과, 예산실, 인사담당관이 책임을 져야 하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체부의 박물관 평가인증 결과 통보에는 이러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시하고 있지도 않으며, 인증과 탈락의 요인이 어떤 부분인지 명확하게 밝히지도 않고 있으니, 평가인증제를 통해 박물관 운영을 개선하도록 하겠다는 문체부의 설명은 공허할 뿐이다.

평가인증제 결과의 통지가 깜깜이라는 것이 실제 지방 공립박물관의 현실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전의 한밭교육박물관은 1938년 준공된 대전삼성초등학교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진설계 지침이나 법령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의 근대문화유산을 박물관 건물로 사용하는 박물관에 내진설계 자료와 내진성능 검사 실시 결과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근대식 학교가 없어, 서당, 향교, 성균관에서 공부했던 조상들의 학력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실정이니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옛 건물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려 하다가도, 포기하는 일이 속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박물관 평가인증제가 지방자치단체의 박물관 설립 의지를 꺾을 수도 있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문체부 또는 국토부, 행안부에서 내진설계 관련 법령이 없던 근대 건축물이나 내진설계 대상이 아니었던 저층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공립박물관에 내진성능 검사를 실시하도록 보조금을 준 사실도 없으나, 2025년 문체부의 박물관평가인증제에서는 내진성능 검사 성적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니 연목구어하는 모양이다.

이런 경우 서류 미비로 인간 감정의 책임은 시설직에게 있을지 학예사에게 있을지는 명약관화하다.

박물관에서의 문제는 곧 학예사 책임이다.

문체부는 학예사 제도를 만들고 자격증은 발급하면서, 학예사의 채용과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학예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문체부가 학예사 자격증을 만들고,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를 박대하는 상황은 더 있다.

문체부에서 채용하는 학예직 공무원의 경우 학예사 자격증 없이도 응시가 가능하다.

가산점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에서 임용고시는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응시가 가능하고, 건축, 토목, 전기 등 시설 직렬의 경우 자격의 등급(기술사, 기능장, 기사, 상업기사, 기능사)에 따라 3~5%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문체부의 학예직 공무원 채용에 있어 가산점이 없는 학예사 자격증은 한자능력시험이나 한국사능력시험만도 못한 자격증이다.

문체부에서는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를 채용하지도 않으면서, 지방자치단체 공립박물관을 평가하는 항목에서는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가 관장으로 재직해야 배당된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박미법에서는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 1인 이상 채용하면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 법에도 없는 요건을 평가인증제의 항목에 넣고 있다.

도서관법에서는 사서 자격증 소지자만이 관장을 할 수 있도록 명문화 되어 있다.

도서관 평가인증제에서 도서관장의 사서 자격증 소지 여부를 점수에 넣는 것은 법적 요건을 충분히 이행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니 정당한 지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박미법에서 박물관장의 요건으로 학예사 자격증 보유를 정하지 않고, 실제평가에서 감점 요인으로 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사립박물관 장려를 통해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기에, 학예사 자격증이 없는 개인 컬렉터가 관장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법 조항을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다만 공립박물관 평가 인증제에 이러한 조직 부분 점수를 넣고자 한다면, 박물관 조직 구성 요건에 대해 법령으로 정해두고, 지방정부가 법령을 잘 지켜 이행하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평가인증제 점수를 구성하는 지표로 활용하는 편이 박물관 제도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앞으로 컨설팅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문체부의 방향에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다양성의 시대, 문화 다원주의 시대, 차별 없는 존중의 시대로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방정부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생각과 방향에 따라 운영되도록 두어야 할 공립박물관에 컨설팅을 하겠다는 것은, 중앙의 기준에 맞춰 획일화하려는 권위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선의 영역에 있는 중앙부처에서 기준을 제시하면, 지방정부는 따라야 한다는 강요로 들리며, 지방문화의 말살을 획책하는 점령군 내지는 내정간섭으로 보인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생각과 가치에 대해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 도입에 대해서 문체부에서 얼마나 고민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당초 인증 유효기간이 2년이었다. 첫 평가 이후, 두 번째 평가가 늦어지면서 법은 자연스럽게 3년 주기로 바뀌게 된다.

평가 유효기간에 대한 적절한 근거도 알기 어렵다.

이런 식이면 한번 평가받은 학예사가 퇴직하기 전까지 평가 기간을 연장해도 될 것이다.

평가에 통과한 학예사는 그 박물관을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운영할 테니, 학예사가 인사이동으로 변경되거나, 퇴직으로 신규 채용이 될 경우,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취지로 실시하고, 그 학예사가 재직하는 기간 동안 평가를 유예해 준다면,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임기제 공무원 신분으로 근무하는 학예사의 계약 연장에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현재 연구직 공무원 채용에 의한 법률에 따른 공무원 학예사는 공립박물관 평가인증 결과에 따라 신분상 불이익이 존재하지 않으나, 임기제 공무원으로 박물관 학예업무를 보고 있는 학예사에게는 소위 밥줄이 달린 평가다.

평가 인증제 탈락은 계약 연장 및 재채용에 있어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은 개구리를 해치려는 의도는 아니나, 돌에 맞은 개구리는 죽는다.

아이들이 던진 돌에 물살이 퍼져나가는 모습은 아름다우나, 돌에 맞은 개구리의 사체를 보는 일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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