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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안동권씨 성화보를 배독한 바,
이런 규모의 족보가 1476년에 이미 발간되었다는 데서,
이 집안의 당시 명망을 알 수 있겠다.
책 하나를 편집하려 해도 원고가 도착하는 때가 들쭉날쭉으로
마지막까지 원고를 보내지 않고 결사저항하는 저자가 부지기수인 바
저때라고 달랐겠는가?
같은 동성의 같은 파보를 만들어도
수단이 제대로 안 되어 20세기나 되어야 파보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집이 널렸는데,
1476년에 사료로 가치도 풍부한 이 정도 규모의 족보를
성도 다른 여러 문중으로부터 수단하여 만들어 낸 것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극심한 근친혼 콩가루 사회를 증명한 안동권씨 족보
https://historylibrary.net/m/entry/%E3%85%87-836069
극심한 근친혼 콩가루 사회를 증명한 안동권씨 족보
‘세계도’에서 단종의 왕통을 입증한 ‘안동권씨 족도安東權氏族圖’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1999년에 유물 상태는 열악했지만, 비단에 붉은 괘선으로 이어진 세계도世系圖를 공개 구입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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