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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광개토왕비에서 신라에 관련된 내용을 추려 쓴다면,
신묘년 기사하고 광개토왕의 신라 쪽 남정 기사 외에는 쓸 말이 없다.
이 부분이 신라하고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견된 비문 내용이 광개토왕비와 서체만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신묘년과 남정기사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저 비문의 남은 조각을 혹여 더 찾을수 있다면,
광개토왕비문의 내용도 좀 더 논란 없이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길래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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