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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

조선시대 법령에 대한 일고

by 신동훈 識 2026.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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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김준근 풍속화 중 이른바 죄인을 잡아가는 장면을 포착한 한 장면

 

조선시대 법령은 필자 전공은 아니지만, 

최근 필자가 조선시대 검안 서류에 대한 의학적 분석을 하고 있는 고로, 

여기서 얻은 감회를 좀 적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법령을 한데 묶은 데이터베이스 확립은 그 학술적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다만,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되었겠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되겠다. 

조선시대 법령은 집행과정이 문제이다. 

규정은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집행했는가가 문제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검안 서류를 보면 초검, 복검, 삼검의 순으로 난해한 재판은 이어지는데

초검에는 딱 잡아 떼던 이가 복검 때 느닷없이 모두 자복했다고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잡아다 팬 것이다. 검안 서류에는 물론 잡아다 팼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지만, 

정황을 보면 잡아다 자백할 때까지 팬 것이 분명하다. 

조선시대에 취조 기록으로 추안급국안 만한 것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여기는 국가에 대한 반역 등 심각한 중죄 관련 정치범 등등에 대한 취조기록이라, 

이 추안급국안에 실린 재판 피의자 셋 중 하나는 물고가 나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는 기록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추안급국안에는 줘 패거나 고문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엄중하지만 신사적으로 물어본 듯 기재되어 있고 

그 사이에 두들겨 팬 기록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취조 중 줘 팬 기록이 합법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이실직고 하라는 말 다음에는 다른 기록 없이 바로 자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자기들도 줘 팬 기록을 남기기에는 뭔가 뒤가 구린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요약하자면 이렇다. 

조선시대 법령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재판에 적용되고 사람들에게 집행될 때는

갖은 탈법이 다 이루어졌다는 점을 우리는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조선시대는 법령과 역사 기록만 본다면, 그렇게 윤리적이고 관대하고 인문적이었던 사회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했는가. 아닐 것이다. 

법령과 실제는 그렇게 엄격히 구분해야 할 것이라 본다. 

 

<국사편찬위원회 신규 자료 소개 - 조선시대 법령자료 원문>

https://historylibrary.net/entry/joseon-laws

 

<국사편찬위원회 신규 자료 소개 - 조선시대 법령자료 원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법전과 수교, 형률서, 전례서 등은 조선시대 연구에 필수적인 사료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들 자료에 대한 정리와 번역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historylibr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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