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필명으로 응도당이라는 이름을 썼더니
누가 호냐고 물어보던데,
필자는 호 같은 거 필요 없는 사람이다.
이름 석자 알리기도 바쁜 판에 뭐하러 두번째 이름을 지어 붙이고 복잡하게 하겠는가.
필자는 21세기 한국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
조선시대 선비 흉내는 낼 생각도 없고 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 방에는 이 글씨 응도당이라는 것이
사진으로 뽑아서 하나 붙어 있는데,

원래 돈암서원에 붙어 있는 당호이고,
송시열이 썼다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응도라는 것은 아마 주자학 사대부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썼을 터인데,
필자는 이를 글쓸 때 마지막에 쥐어짜며 퇴고하는 과정으로 현대식으로 풀어 쓴다.
글을 쓰건 논문을 쓰건 책을 쓰건 간에
마지막 퇴고 과정은 정말 사람 할 짓이 못된다.
AI가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제일 먼저 퇴고를 대신 좀 해줬으면 하지만,
AI란 놈은 몇 번 써보니
쉬운 것만 하고 정작 어려운 것은 개발새발해서 내 놓는 넘이라,
내가 죽기전에는 이 퇴고를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방에는 여전히 응도당이라는 글자를 붙여놨다.
필자에게 있어 응도당이라는 세 글자에서 중요한 한 글자는
도가 아니라 응이니,
써 놓은 것을 결정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아마 조선시대 사대부라면 응짜보다는 도짜를 뽑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아니다.
도짜보다 응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줏어드는 필자는
도학자가 아니라 역시 지식노동자에 더 가깝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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