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강서원을 둘러 보기 전, 역사문화라이브러리 구독자라면 한국사검정능력시험 문제즘은 쉽게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문제 하나 올립니다.
네 정답은 5번 입니다.
제가 너무 쉬운 문제를 드렸지요. ㅎㅎ
저도 인터넷으로 박세당/사문난적을 검색하다 보게 되었습니다.
사문난적으로 죽게 된 박세당
인조반정 이후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명분론을 강화하고 성리학을 절대화하였다.
<문제 해설>
반면에, 성리학을 상대화하고 6경과 제자백가 등에서 모순 해결의 사상적 기반을 찾으려는 경향도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윤휴와 박세당이다. 이들은 주자의 학문 체계와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당시 서인(노론)의 공격을 받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다.
박세당(1629~1703)은 저서 <사변록>에서 양명학과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였다. 소론이었던 그는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경서를 해석하여 성리학과 경서에 대한 주자의 해석과는 달리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해석을 내려 중국 중심의 학문 태도를 비판하고 유학의 입장에서 노장사상 등을 도입하여 유학의 실리적 측면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노론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리었다. 농서로는 색경(1676)을 저술하였다.
(* 출처 : 백준기 한국사)
의정부 노강서원(議政府 鷺江書院)은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있는 서원으로 박세당의 둘째아들 박태보를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입니다. 박세당 고택 쪽에서 석림사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노강서원은 1695년 문렬공 박태보를 모시기 위해 경기도 과천군의 노강(鷺江, 현 서울 노량진)에 충렬사(忠烈祠)로 지어져 1697년사액을 처음 받았습니다.
1791년 노강서원으로 승격되면서 다시 사액을 받았으나 서원철폐령을 거치면서 한국전쟁 때 파손되었고, 1969년 현재 위치인 의정부시에 복원하여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서원 안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렇게 문틈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건물 자체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서원에 모시는 인물, 그분의 정신을 아는게 더 의미 있지 않겠습니까?
절대 서원 안에 들어 가지 못해 이러는 거 아닙니다. 푸하하하. 정신승리??!
문틈으로 보이는 서원 건물을 보면 교육 공간인 강당은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노강서원 자리 옆으로 반남박씨문중 사무실(?)이 있어 가기서 관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강서원에서 모시고 있는 박태보(朴泰輔 , 1654∼1689) 인물설명은 한민족문화대백과 내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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