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조카이자 사위이고, 김흠순 아들인 김반굴金盤屈은 그 이름 반굴이 그 자체 특정한 의미를 지닌 작명법임을 앞서 지적했거니와, 그렇다면 궁금하지 아니한가?
왜 저 시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저이는 반굴盤屈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이것이 궁금하지 않냐 이거다.
이는 앞서 밝혔듯이 본래는 산해경에서 출전을 삼는데, 그 반굴은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상상의 산에 자라는 복숭아 나무 가지가 삼천리 가지를 뻗친다 하면서 그것을 묘사할 때 구사된 구절이다.
이를 통해 모름지기 저 시대 신라사회가 산해경을 소비했을 것이라는 발상은 겉핥기에 지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소비한 신라사회 앙태 일면을 들여다 보는 증언이라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나는 본다.
도삭산이라는 신선의 산, 복숭아 나무 이런 키워드를 묶으면, 그 시대 신라가 소비한 문화 양태 일면이 드러난다.
그의 사촌형이자 김유신 장자 또한 이름이 삼광三光인데, 이 삼광은 말할 것도 없이 해 달 별을 말한다. 이를 삼광이라 뭉뚱거린 사상 원천은 전한 말기에 집중 출현하기 시작하는 이른바 참위서들이다.
참위? 고려시대에나 이병도가 계우 긁적거린 그딴 것이나 생각했지 김유신 시대 신라가 소비한 참위를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이는 그 시대 이름에서 그 시대 사상까지 읽어낸다는 단적인 보기다.
한때 내가 이 작명법을 통한 문화사 탐구를 부르짖으며 관련 논문을 쏟아냈거니와, 이후 어떤 놈인가 한국고대사 대가로 통하는 놈 글을 보니 그 시대 작명법을 보면 그 시대 사상을 본다는 그 딴 말을 아무런 인용도 없이 쓴 대목을 보고는 기가 찼다. 그래 맘대로 베껴 쳐먹으라 하고 말았다.
김유신은 그 이름 유신이 중국의 저명한 시인 이름을 딴 데서 비롯한 것이라는 증언이 삼국사기 그의 열전에 남았다.
김유신이 595년 태어나서 저런 이름을 얻을 무렵 놀랍게도 유신庾信(513~581)은 이제 막 죽은 직후였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김유신이 태어나던 무렵, 신라는 이미 동시대 중국 문화를 동시대에 소비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 아닌가 말이다.
유신이 한창 주가를 날리던 무렵, 그의 시는 유행가처럼 상층부이기는 하지만 신라사회에서도 동시대에 소비되고 있었다.
그의 동생 김흠순欽純은 일명 흠춘欽春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 딱 보면 뭐가 떠오른가? 뭐긴 뭐야? 서경書經이지.
이름 하나로도 이런 문화사를 읽어낼 수 있다.
#작명법 #이름 #이름의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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