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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름조차 패션스러웠던 피에르 가르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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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 거장 피에르 가르뎅 영면에 들다(종합2보)
송고시간2020-12-29 23:26 현혜란 기자
14세때 재단사로 시작…디오르의 첫번째 재단사로 고용
1950년 자신 이름 딴 브랜드 출시…세계 패션산업 주도
냉전시대에도 중국·러시아에서 패션쇼 선보이며 주목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065541189507827

 

패션계 거장 피에르 가르뎅 영면에 들다(종합2보)

(서울·파리=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현혜란 특파원 = 패션계의 전설, 기성복의 선구자로 불려온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2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8세.유족은 이날 언론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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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나만 그런가 자신은 없는데 내 세대엔 무조건,덮어놓고 패션하면 피에르 가르뎅이었다. 어쩌다 이리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언제나 피에르 가르뎅 피에르 가르뎅 하고 다닌 기억이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몰랐고, 심지어 그가 사람인지 의류상포명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만큼 내 세대에는 각인한 사람이다. 

 

암튼 그는 풀 네임조차도 뭔지는 모르지만 패션스러웠으니 피에르...가르뎅...뭔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런 느낌을 주곤 했다. 

 

그런 그가 갔다는 긴급 소식이 속속 들어오는데, 나도 참 무던하지. 그걸 접하면서 오잉? 이 사람이 실존인물이야? 살아있었어? 하고 말았다. 하긴 뭐 대략 나보다 언론계 경력으로 대략 10년 정도 뒤쳐진 어느 후배가 내가 쓴 고고학 관련 기사에서 최몽룡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대뜸 "아니 이 사람 아직도 살아있어요?" 했으니 말이다. 

 

1993년 11월 18일 방한 때 피에르 가르뎅

 

우리 세대엔 그런 게 있다. 교과서 같은 데 나오는 사람은 무조건 저 높은 하늘에 있을 것만 같고, 감히 범접도 하지 못할 그런 경외심을 심어주곤 했으니 말이다. 나로선 가장 뜻밖의 대학 은사가 이상섭 선생. 

 

평론분야에서 명성을 구축한 이 양반이 연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줄 내가 우째 알았겠는가? 국문학과 교수도 아니요 영문과 교수? 교과서에 수록된 그의 문학평론을 읽을 때는 그냥 막연히 퇴직해도 한참 전에 퇴직했을 분으로 알았는데, 그런 양반이 여전히 현직교수였고, 그런 양반한테서 졸업 때까지 4년을 더 배우고 내가 졸업하고서도 한참이나 지나서 퇴직하셨으니 말이다. 

 

1993년 방한 때 피에르 가르뎅

 

암튼 피에르 가르뎅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대체 이 양반 연세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았던 향년 98세란다. 1922년생? 21년생인 아부지랑 같은 연배다. 같은 아부지인데 저짝은 지구를 들었다 놨다 하고는 1세기를 살다 가고, 이짝은 생평 소작농으로 사셨으니, 아 아부지는 아부진데 어찌 이리 다르단 말인가? 하고 너털 웃음 지어 본다.  

캬...그의 족적을 살피니 골 때린다. 당연히 불란서 사람으로 알았더니 이태리 태생이란다. 14살에 처음 재단사로 입문했다니, 하긴 그러고 보면 내 고향 친구 중에서도 딱 그 나이에 재단사로 빠진 이가 있다. 그의 행적을 보니 젊은 시절 파리에서 장 콕토가 감독한 영화 '미녀와 야수'(1946) 의상을 만들었다는데 장 콕토라...그 유명한 천하의 난봉꾼 문제아 장 콕토란 말인가? 샤르트르랑 놀면서 질펀하게 놀았나? 

 

1993년 피에르 가르뎅 패션쇼

 

그의 일생은 20세기를 농축한 프랑스 역사다. 20세기를 농축한 세계사다.

 

거인의 죽음을 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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