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시대 동아시아가 낳은 위대한 천재 맹자는 이렇게 설파했다.
曰; 臣聞之胡齕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 曰; 牛何之, 對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 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廢釁鐘與.
曰; 何可廢也 以羊易之. 不識有諸.
曰; 有之.
曰; 是心足以王矣. 百姓皆以王爲愛也, 臣固知王之不忍也.
王曰; 然. 誠有百姓者. 齊國雖褊小, 吾何愛一牛. 即不忍其觳觫, 若無罪而就死地, 故以羊易之也.
曰; 王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 以小易大,彼惡知之.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何擇焉.
王笑曰; 是誠何心哉? 我非愛其財, 而易之以羊也, 宜乎百姓之謂我愛也.
曰; 無傷也. 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 不忍見其死, 聞其聲, 不忍食其肉.
是以君子遠庖廚也.
오래된 책을 못 버리는 것은 딱 맹자 양혜왕 장구에 나오는 이 일화와 같으니
책장에 꽂힌 책을 보는 순간 그 책에 얽힌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서
차마 버리지 못하는 측은지심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을 버리려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limbo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limbo에 두면 측은지심이 일어나지 않으니 책에 대해 냉정히 평가하게 되고
책과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책이 책장에 그대로 꽂힌 상태에서 그걸 뽑아 버린다?
그게 될 리도 없고, 맹자님이 말씀하신 바 "측은지심"이 일어나 버리려고 하다가 도로 꽂게 되는 것이다.
왕이 소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책을 정리하겠다면 그 책을 일단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워야 한다.
그렇게 치운 상태에서 세월이 경과하여 다시 찾게 되지 않는다면
그 책은 내게 필요 없는 것이고,
바야흐로 필요한 누군가에게 양도하거나
아니면 책과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노년의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익숙한 책을 떠나 신간으로 가라 (0) | 2026.06.15 |
|---|---|
| 다치바나 다카시, 그 허망한 "고양이 빌딩"의 종말 (0) | 2026.06.14 |
|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 (0) | 2026.06.14 |
| 책과 이별 전 연옥에 두다 (0) | 2026.06.13 |
| 책의 기증... 죽을 때 전부 버려라 (0) | 2026.06.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