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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인간아, 넌 잠도 없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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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3) 


추운 밤(寒夜)


[淸] 원매(袁枚) / 김영문 選譯評 


추운 밤 책 읽다가

잠조차 잊었는데


비단 이불에 재만 남고

향로에는 연기 없네


고운 사람 화가 나서

서책 빼앗으며


낭군님아 지금 한밤

몇 시인지 아시나요


寒夜讀書忘却眠, 錦衾香燼爐無煙. 美人含怒奪書去, 問郞知是幾更天. 





책 읽기에 미친 사람을 서치(書癡)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책바보’ 또는 ‘책벌레’ 정도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치(癡)’ 자 속에는 매우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멍청하다’, ‘굼뜨다’, ‘미치다’, ‘빠져들다’, ‘천진하다’, ‘병적이다’, ‘집중하다’, ‘정을 쏟다’ 등등... 책에 빠져들어 ‘치(癡)’의 상태에 이르면 이런 각종 증세를 드러낸다. 중국 현대 작가 중에서 서정 수필로 유명한 주쯔칭(朱自淸)은 결혼식 당일 혼례 시간이 됐는데도 예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깜짝 놀라 신랑을 찾아나섰다. 한참이나 찾은 끝에 그들은 서재에서 책 읽기에 빠져든 주쯔칭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예쁜 신부를 맞이한다는 사실도 잊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가히 애서광(愛書狂)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애서광들에게 겨울은 책 속으로 빠져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기나긴 겨울밤이야 말로 아무 거리낌 없이 깊고 넓은 책의 세계를 유영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밖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말 그대로 “눈오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다(雪夜閉門讀禁書)”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당신의 눈길이 책속에만 머물러 있는 한 당신의 사랑을 갈망하는 고운님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을지 모른다. 고운님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시려나? 당장 책을 내던지고 비단 금침 속으로 뛰어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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